독일 조앤 슐츠
“여성억압 다룬 주제 세계적 공감 얻어
노래처럼 들리는 한국어 발음 매력적”
중국 송태유
“AI 번역 결과물 평가하는 건 결국 인간
문학 작품 번역에는 정답 있을 수 없어”
이집트 민나 알레파이
“아랍어와 한국어 모두 잘하는 이 적어
중동 시장서 여러 작품 잘 번역하고파”
세계일보는 10월21일 서울 동대문구 한국외국어대에서 한국 문학을 세계에 널리 알릴 미래의 번역가 3명을 인터뷰했다. 일반대학원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번역전공(KFLT)’ 석·박사 과정 중인 이들은 한강의 노벨상 수상에 대해 “한국 문학이 세계인을 공감시켰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고맥락적 언어’로 꼽히는 한국어를 제대로 번역하기 위해선 한국 언어와 문화에 익숙한 번역가 자질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005년 중동 지역 최초로 한국어과가 개설된 이집트 아인샴스대 1기 졸업생인 민나 알레파이(36·이집트)는 “개인·집단의 트라우마를 다룬 한강 작품은 세계인의 경험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영국의 번역가 데버라 스미스가 석·박사를 밟은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SOAS)에서 한국학을 공부한 조앤 슐츠(29·독일)는 “한국의 가부장적 문화에서의 여성 억압을 다룬 작품은 동북아를 넘어 세계에서 인정받는 주제가 됐다”고 전했다. 한국문학번역원·KFLT 박사 과정을 수료한 송태유(30·중국)는 “문학을 통해 그 나라를 볼 수 있다”며 “번역은 두 나라를 잇는 다리”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어떻게 보나.
(태유)“언젠가 나올 줄 알았다. 한국문학번역원에서 한국 근현대 소설을 다루면서 한국 문학의 힘을 느꼈다. 특히 번역의 공이 컸다. 번역이 문학 위상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볼 계기가 됐다. 앞으로 한강 외 다른 작가들의 수상 가능성도 클 것으로 본다.”
(조앤)“아시아 여성 작가의 첫 노벨상 수상자가 여성 이슈를 다루는 한강이어서 의미가 크다. 한국, 동북아시아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겪는 여성에 대한 억압, 여성 문제에 대한 비판이 세계적으로 공감을 얻었다.”
(태유)“중국에서도 ‘채식주의자’는 유명하다. 아시아 문화권에서 여성 지위와 사회적 불평등은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한강의 성공은 혼자만의 성공이 아니라 아시아 여성, 세계 여성의 차별적 역사가 인정받았다는 의미가 있다.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자랑스럽다.”
(민나)“한강 작가가 학문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학습 대상이 된 것 같다. 한강은 한국 대표라기보단 휴머니즘, 인간을 대표하는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강의 작품은 국가와 민족을 넘어 같은 인간으로서 공감할 수 있다. 노벨상 수상 후 ‘전쟁과 세계의 고통’을 말한 한강 작가 전언이 이집트 뉴스에도 많이 나왔다. 그 발언 이후 더 유명해졌다.”
―좋아하는 한국 문학 작품을 꼽는다면.
(민나)“한강의 ‘소년이 온다’. 영문판 제목이 ‘휴먼 액츠(Human Acts)’인데 한국이 먼 나라이지만 우리나라, 중동과 닮았다고 느꼈다. 광주의 비극에서 중동 민주화의 비극을 볼 수 있다. 비슷한 이유로 이문열 작가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도 좋아한다. 독재자 무바라크 시대의 이집트 사회랑 똑같다.”
(태유)“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정말 좋아한다. 근대화·도시화 과정에서 노동자 계층의 소외, 사회 불평등이 피부로 다가왔다. 집이 철거되는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난장이가 자살하는 비극으로 끝맺은 것도 사회복지가 중요한 현재 상황과 이어진다.”
(조앤)“처음 읽은 작품이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였다. 한국을 전혀 모르는 독자에게 이 책을 어떻게 번역해 전달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한국어만의 매력이 있다면.
(조앤)“한국어 발음이다. 한국어엔 영어랑 독일어에 없는 멜로디가 있다. 모음 ‘ㅇ’에 비음이 들어가서 한국어를 들으면 노래처럼 들릴 때가 있다.”
(민나)“2005년 제 대학에 한국어 전공이 처음 생겼을 때 한류가 나왔고 국영방송에 ‘겨울연가’가 방영됐다. 그때 한국어의 멜로디가 좋았고 낭만적인 언어라고 느꼈다.”
(태유)“중국어엔 성조가 있어서 한국어가 노래처럼 느껴지진 않는다. 대신 입 모양이 ‘ㅇ’ 형태를 띨 때가 많아 신기했다. 예전엔 중국에서 한국어는 ‘습니다’라는 어미로 인식됐는데 한류가 들어오고 ‘오빠’, ‘언니’란 표현이 퍼졌다. 오빠는 지금도 중국에서 멋진 한국 남자 이미지다.”
―한국 문학 번역의 특징이 있다면.
(태유)“한국어는 고맥락적 언어다. 내가 쓴 한국문학번역원 졸업작품 특징 중 하나는 주어가 없다는 점이다. 주인공의 말인지 주인공 마음속 그림자의 말인지 계속 추측해야 한다. ‘주룩주룩’, ‘캬’, ‘쭉’ 의성어, 의태어는 온전히 번역하기 어렵다. 또 문화는 상하관계가 있다. 영어권은 다른 언어와의 관계에서 우위에 있어 영어 독자를 배려하며 내용을 풀어 설명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K문화’가 세계적으로 퍼지면서 독자 중심의 배려보다, 예컨대 ‘김치’를 그대로 전하는 것처럼 자문화를 그대로 전달하는 번역 방식도 고민하게 된다.”
(조앤)“문화소 번역이 까다롭다. 도착 언어(독자 언어)에 없는 개념을 설명하거나 다르게 전달해야 한다. ‘오빠’가 대표적이다. 사랑하는 사이끼리 쓰는 말을 ‘older brother’로 번역한 걸 보면서 혼란스러웠다. 텍스트 타입도 고려해야 하는데 K드라마는 한국 문화를 잘 아는 사람이 접하는 경우가 많지만 문학 작품은 다르다. 한국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독자인 경우도 살펴야 한다.”
―한강 작품 번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조앤)“데버라 스미스 번역 논란을 알고 있다. 번역본을 한국어로 다시 번역한 적이 있는데 작가 의도를 효과적으로 전달했다고 느꼈다. 원본의 문장을 그대로 번역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작가의 의도에 집중해서 같은 효과를 느낄 수 있게 번역하는 것도 필요하다.”
(민나)“한강 작품은 한국어 대표 작품으로 보기 어려울 수 있다. 인간의 트라우마 같은 충격적이면서 공감 가는 내용이 많이 있어서 직역보단 독자에 맞게 자국화된 번역이 많다.”
(태유)“번역은 불가능한 일이다. 두 나라 간 문화 소통을 도와주는 역할로 봐야 한다. 완벽한 번역은 없다.”
―외국인 한국어 번역가가 중요한 이유는 뭔가.
(태유)“한국어를 번역하는 한국인, 외국인 각각 장단이 있다. 외국인은 모국어를 활용해 독자 가독성을 높일 수 있고, 한국인은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높아 오역을 줄일 수 있다. 요새는 둘이 협력하는 경우도 많다.”
(민나)“협력이 중요한데, 아랍어는 주로 한국문학번역원 지원으로 번역된다. 한국어와 아랍어를 잘하는 아랍인이 별로 없다. 1명이 여러 개를 번역하고 있는데 한국문학번역원 양성 과정에 아랍어가 없어서 아쉽다. 아랍어 수요자가 늘 텐데 교육 과정에 포함되면 좋겠다.”
―AI 시대에도 번역가가 필요할까.
(태유)“AI와 따로 갈 수 없는 시대다. 지금도 1차 번역은 AI가 하고 인간이 수정하는 작업을 많이 하고 있다. 다만 AI의 번역 결과물을 평가하는 건 결국 인간이다. 정보 중심의 텍스트가 아닌 문학 작품은 번역에 정해진 답이 없다. AI를 쓰임새가 높은 도구로 활용할 수는 있어도 AI가 인간을 대체하긴 어렵다.”
(조앤)“인간의 사고력과 창의성을 AI가 따라오긴 어렵다. 아직 비판적 사고능력도 없어서 많은 정보 중에 맞는 정보를 선택했는지 알 수도 없다. 번역가의 중요성은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민나)“AI가 받아들이는 정보에 대한 품질 관리도 필요하다. 아직은 AI와 협업하기 쉽지 않다.”
―앞으로 계획.
(민나)“아랍어와 한국어를 모두 잘하는 아랍인이 아직은 적다. 중동 시장에서 앞으로 한국어 번역은 많아질 테고 한국의 여러 문학 작품을 더 잘 번역하고 싶다.”
(조앤)“한국과 영국 간 문학·문화 등 의사소통 관계를 높이는 데 기여하고 싶다. 좋은 번역가가 되려면 언어와 문화를 알아야 한다. 한국의 문화적 요소를 번역가로서 제대로 전달하고 싶다.”
(태유)“교육자가 돼서 중국인 한국어 학습자에게 제가 배운 걸 가르치고 싶다. 번역가로 한국 소설 한 권이라도 제대로 번역해 중국에 출판하고 싶은 생각도 있다. 문학·문화가 번역을 통해 활발히 교류되면 국가 간 관계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 다른 나라의 사상과 문화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면 큰 보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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