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사 해외 단체관광 취소 속출
증시 폭락·물가 우려에 지갑 닫아
상인들 “탄핵정국 얼른 끝내달라”
9일 저녁 장사가 한창일 오후 7시쯤 찾은 서울 중구 서울특별시청 근처의 한 레스토랑에서 매니저 오모(33)씨는 텅 빈 테이블을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오씨는 “비상계엄 사태 뒤 매출이 전주에 대비 25%가량 떨어졌다”며 “가게가 큰 편이라 주변 시청 직원이나 회사에서 회식 예약이 많은 편인데 오늘 단체 예약만 4팀이 취소됐다”고 하소연했다.
오씨는 “예약뿐 아니라 일반 손님들의 씀씀이도 작아졌다. 식사하면서 음료나 와인 등을 시키곤 했는데 이제는 밥만 먹고 간다”며 “얼른 탄핵 정국이 마무리되길 간절히 원한다”고 덧붙였다.
‘12·3 비상계엄 사태’의 후폭풍이 연말 특수를 기대하던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호되게 직격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여야 정치권 대립이 장기화하며 증가한 불확실성이 내수심리를 위축시키고 있어서다. 현 상황에 불안을 느낀 외국인 관광객마저 한국행 발길을 끊으며 내수 경기가 최악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 사태에 이은 고물가·고금리 장기화로 이미 벼랑 끝에 몰린 소상공인들에게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다.
비상계엄 사태 뒤 식당가로 향하는 시민 발걸음이 끊긴 이유로는 확산한 불안감도 있지만 계엄 뒤 폭락한 자산가치 탓도 크다는 말이 나온다. 실제 계엄 당일 종가 2500.10이었던 코스피는 계엄 뒤 하락세를 이어가 9일(종가 2360.58) 2400선이 무너졌다. 이는 종가 기준으로 지난해 11월 이후 1년1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원화 가치 하락도 이어지며 지난 9일 원·달러 환율은 1432.0원을 나타냈다. 비상계엄 선포 전인 이달 2일(1406.5원) 대비 무려 25.5원이나 껑충 뛰었다. 특히 급격한 환율 하락은 1%대로 떨어진 물가상승률을 다시금 자극할 확률이 있어 내수에 치명적이다.
외국인 관광객은 비상계엄 사태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여야 할 오후 2시쯤에도 이날 명동 거리는 비교적 한산했다.
이곳에서 20년 넘게 닭꼬치 장사를 하고 있다는 이모(53)씨는 “연말 특수는커녕 계엄 이후 매출이 40% 정도 떨어졌다”며 “하루가 다르게 관광객들이 줄고 있다. 특히 여행사들이 단체 관광을 취소한 것이 직격타”라고 말했다.
인근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는 A(50대)씨는 “가뜩이나 힘든데 정부가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왜 재를 뿌리는 거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처럼 관광객이 줄어든 배경에는 현 사태를 바라보는 주변국의 불안이 자리한다. 지난 비상계엄을 기점으로 미국, 영국, 일본 등 주요 국가가 자국민 보호를 위해 ‘한국 여행 주의보’를 공식화했고 이를 해제하지 않고 있다.
이날 한국에 도착했다는 유카(25·일본)씨는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했지만 이미 몇 개월 전부터 계획한 여행이라 취소할 수 없었다”며 “항공권을 예매하지 않은 주변 사람들은 한국 여행을 취소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독일인 시담 울루터크(23)씨는 “주변에서 한국 여행에 대해 우려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와중에 각자의 유불리를 따지며 사태 수습에 미온적인 정치권을 바라보는 민심도 싸늘하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경제 주체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불확실성’이고 이를 가능한 한 빠르게 해결하는 게 민생 악화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꼬집었다. 우 교수는 또 “코스피, 환율만 보더라도 이미 민생 피해가 상당하다”며 “정치권은 최대한 빨리 하야든 탄핵이든 결정을 해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예산을 증액해 내년 1월까지는 어떤 형태로든 내수진작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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