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시민 “우리는 할 수 있나” 자문
한국, 탄핵 정국 명료한 수습 나서
견고한 민주주의 회복력 보여줘야
얼마 전 만난 한 스시가게 요리사는 기자에게 “한국 참 힘들겠다”고 말했다. 불쑥 건넨 말이었지만 지난 3일 비상계엄령 선포 이후 이어진 혼란함을 이야기한 거란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뉴스를 본 거냐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 언론에는 관련 뉴스가 넘쳐난다. 주요 신문이 1면 머리기사로 다루고, 방송은 국회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도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오판이라고 평가하고,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주도의 탄핵 과정을 전했으며 한·일, 한·미·일 관계에 미칠 영향을 전망했다. 대체로 스시가게 요리사와 대화를 나누며 느꼈던 부끄러움과 씁쓸함을 지울 수는 없는 내용인데, 지난 6일 아사히신문 홈페이지에서 본 한 기사는 달랐다.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에 선언한 비상계엄. 시민과 국회의원의 저항으로 하룻밤에 해제되었다”고 시작하는 이 기사는 만약 일본에서 비슷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라고 스스로 묻고 답하는 일본인들이 있다고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3일 밤에서 4일 새벽 한국 상황을 내내 인터넷으로 지켜본 요코하마시의 한 50대 여성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인간사슬이 되어 계엄군에 저항하는 모습에 압도됐다. 우리는 나가타초로 달려갈 수 있을까”라고 썼다. 나가타초는 국회 의사당, 총리 관저가 소재한 도쿄 행정구역으로 일본 정계를 통칭하는 말로도 쓰인다. 나가노현에서 출판업을 하는 60대 남성은 “한국에는 탄압과 저항의 역사를 통해 독재자가 군을 움직여 시대를 되돌리게 해서는 안 된다는 공통된 인식이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의를 제기하는 수단은 선거 이외에도 있다는 의식을 우리는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인들의 이런 인식이 일본 사회에 뿌리내린 정치적 열패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읽혀 특히 흥미로웠다. 기사는 정치적 요구를 하는 것을 피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풍조까지 있다는 한 시민운동가의 견해를 전했다. 한 프리랜서 언론인은 “주권자는 우리이고, 의원에게 권한을 맡기고 있을 뿐이라는 의식을 쌓아 우리가 원하는 사회를 만드는 수단으로서 민주주의를 키워 나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이 압도당했다고 한 3일 늦은 밤, 4일 새벽 시민들의 저항은 여의도 국회 앞에서 수만 명이 참가한 탄핵 촉구 집회로 이어졌다. 2016년 11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며 광화문광장을 가득 채웠던 시민들의 함성이 대상을 달리해 재연됐다. 이토록 엄중한 요구를 축제하듯 쏟아내고 있다는 점은 놀라웠다. 집회 참가자의 상당수를 차지한다는 20∼30대 젊은이들의 재기발람함이 낳은 풍경이다. 한국의 정치적 혼란을 전하는 외신들이 주목한 지점도 여기다. 로이터통신은 “시민들은 아이돌그룹 노래에 맞춰 응원봉을 흔들며 탄핵을 외쳤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는 “과거 촛불을 들고 서울 거리를 장악하면서 엄숙하게 진행되던 집회 모습과 다르다”고 짚었다.
한국이 참 힘들겠다고 한 스시가게 요리사에게 “금방 괜찮아질 것”이라고 대답했다. 비상계엄 발령에 따른 정치적 혼란이 걱정되고 훈수라도 두려는 듯한 외국 정부와 외국인들의 오지랖이 짜증스럽지만 신속하게 해소될 것이라는 데는 나름의 확신이 있었다. 그 자리에 두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권력에 대한 단호하고 질서 있는 저항을 2016년 이미 경험한 바 있고, 2024년에도 그렇게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을 두고 ‘위기 상황에 똘똘 뭉치는 민족성을 가졌다’고 말하는 것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 편이었는데 여의도 집회 상황을 일본에서 지켜보며 정말 그런건가 싶어지기도 했다.
시민들의 요구에 정치권이 제대로 응답하는 것이 남았다. 14일 국회가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통과시키며 중대한 고비를 넘겼지만 전부는 아니다. 여전히 불확실성이 크다. 한국의 상황을 불안하게 보는 외부의 시선은 여전하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견고한지, 비정상을 떨쳐내는 회복 탄력성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주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된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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