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가 골수 검사를 위해 검체를 채취하는 업무를 인정한 대법원 판결에 의사와 간호사 단체가 상반된 반응을 보이는 가운데 환우단체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당장 간호법 시행령 제정을 앞두고 ‘갑론을박’이 거센 상황이라 ‘이번에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18일 의료계에 따르면 한국백혈병환우회는 전날 환자 실태조사 결과와 함께 골수검사와 관련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간호사의 업무 허용 범위를 둘러싼 논란이 내년 시행을 앞둔 간호법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또다시 불거질 전망이라서 임상 적용에 대한 신중한 후속 논의와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환우회는 올해 10월 골수검사 경험이 있는 백혈병·혈액암 환자 35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의사만 할 수 있는 의료행위라고 생각한다’는 답변이 60.5%에 달했다고 밝혔다. ‘교육·수련과 의사의 지도를 받으면 전문간호사도 골수검사를 하도록 하는 것에 찬성하는가’라는 질문엔 반대가 49.4%로 찬성(39.3%)보다 많았다. ‘잘 모르겠다’가 11.3%다.
다만 환자들의 38.1%는 ‘골수검사를 한 번에 성공하지 못해 여러 번 받았다’고 밝혔다. “환자가 실습 대상이라 무섭다”, “매달 바뀌는 레지던트보다는 전문간호사가 하는 게 더 좋다”는 의견도 있었다. 환우회는 “골수검사와 같은 침습적 검사행위에 대해 전공의들의 수련 대상인 환자의 안전과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앞서 대법원은 12일 2018년 서울아산병원 교수들이 간호사들에게 골막뼈 겉면을 뚫어 골수를 채취해 조직을 검사하는 ‘골막 천자’를 시킨 사건에 대해 무죄 취지의 판단을 내렸다. 대법원은 “골수 검사는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진료행위 자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의사가 현장에 입회할 필요 없이 일반적인 지도·감독 아래 자질과 숙련도를 갖춘 간호사로 하여금 진료 보조행위로서 시행하게 할 수 있는 의료행위라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의사단체는 대법원 판단에 반발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단순 숙달 여부 등을 이유로 본질적인 업무 범위가 달라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간호조무사, 의료기기 업체 영업사원의 경우에도 이런 논리가 적용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사건을 고발한 대한병원의사협의회도 “의료인 면허체계의 근간을 흔든 오판을 규탄한다”고 했다. 의사들은 “숙련된 진료지원 간호사(PA)는 수술도 봉합도 해도 된다는 말이냐”고 반발했다.
반면 한국전문간호사협회는 “간호의 전문성과 환자 중심 의료를 반영한 현명한 판결”이라며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간호사협회는 “장비 발달 등으로 인해 의사만 할 수 있던 것으로 인식됐던 일부업무가 간호사에게 위임됐다”며 “의사 수급 불균형이 고착화한 상황에서 안전한 최선의 의료서비스를 위해 적절한 업무 범위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간호법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의사와 간호사간 입장차는 더욱 선명해질 전망이다. 간호법 제정안은 올해 8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내년 6월 시행 예정이다. 다만 PA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포함해 간호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마련 등 후속작업이 남아 있다. 시행령 제정에 앞서 환자 안전과 의료진 부담 등을 고려한 가이드라인과 신중한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한간호협회 측은 “의사가 해야 할 다른 침습적 행위도 간호사에게 떠넘겨질 수 있어 법적 부담 등을 고려한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번 대법원 결정에 대한 확대 해석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높다.
의사의 의료 독점권이 완화하는 추세이지만 이번 대법원 판결은 ‘해당 행위는 무면허 의료 행위가 아니다’는 판단일뿐 ‘모든 간호사가 골막 천자를 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간호법 시행령 제정 과정에 구체적인 업무 범위에 대한 논의가 꼭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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