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이태원로의 전쟁기념관은 1994년 문을 열었다. 기념관이 들어서기 전 해당 부지에는 육군본부가 있었다. 1989년 육군본부는 물론 영등포구 신길동의 해군본부, 동작구 대방동의 공군본부가 일제히 충남 계룡대로 옮겨갔다. 당시 노태우정부는 옛 육군본부 자리에 전쟁기념관을 짓기로 결정하고 계룡대 이전 이듬해인 1990년 공사에 착수했다. 기념관을 운영할 주체로 국방부 산하 공공기관인 전쟁기념사업회도 출범했다. 초대 기념사업회장에는 6·25전쟁 당시 큰 공을 세운 전쟁 영웅이자 노태우 대통령이 군인 시절 깊이 존경한 이병형 장군(중장으로 예편)이 임명됐다.
전쟁기념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전시 공간은 6·25 참전 22개국 용사들의 활약상을 소개한 유엔실이다. 원래는 21개국이었는데 2018년 문재인정부가 독일이 의료지원단을 파견한 사실을 뒤늦게 인정해 22개국으로 늘었다. 미국, 영국, 캐나다 등 16개국은 전투 병력을 파병해 한국군과 함께 싸웠다. 인도, 스웨덴, 이탈리아 등 6개국은 의료진을 보내 다치거나 병든 군인과 민간인들을 치료했다. 이 22개국 출신 인사들은 기념관을 둘러보며 70여년 전 자국에서 온 군인, 의사, 간호사들이 낯선 한국 땅에서 평화를 위해 분투한 모습을 확인하고 진한 감동을 느끼곤 한다.
서울지하철 4·6호선 삼각지역은 전쟁기념관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이다. ‘삼각지’라는 지명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초반에 생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땅 모양이 세모꼴이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꽤 오랫동안 삼각지는 육군본부와 동의어처럼 쓰였다. 육군본부가 계룡대로 이전한 오늘날에도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등 한국군 지휘부가 쓰는 청사와 전쟁기념관 등이 모두 삼각지역 부근에 있다 보니 ‘삼각지’ 하면 군대부터 떠올리게 된다. 올해 기념관 개관 30주년을 맞아 서울시가 삼각지역 명칭을 ‘삼각지(전쟁기념관)’로 변경한 것은 적절한 조치라고 하겠다.
역명 병기 효과가 당장 나타난 것일까. 20일 올해 전쟁기념관을 찾은 누적 방문객 수가 사상 처음으로 300만명을 돌파했다. 1994년 개관 후 30년간의 누적 관람객 수는 무려 4100만명에 이른다. 올해 300만째 방문객의 영예는 호주에서 온 한국계 호주인 가족에게 돌아갔다. 호주는 6·25전쟁 당시 한국에 연인원 1만7000여명의 군대를 파병해 그중 346명이 장렬하게 전사한 대표적 참전국이다. 전쟁기념사업회(회장 백승주)가 정성껏 마련한 기념품을 받아든 호주인 부부는 “처음 한국을 방문한 자녀들에게 한국 역사를 알려주고 싶어 전쟁기념관을 찾았다”고 말했다. 참으로 고마운 나라요, 고마운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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