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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진의 ‘에스파냐 이야기’] (38회) 산토 도밍고 데 실로스 : 중세의 열정과 영적인 기운이 서린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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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1-06 14:04:22 수정 : 2025-01-06 14:0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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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가까운 나라 스페인

산토 도밍고 데 실로스는 스페인 북부 부르고스 옆 작은 마을이다. 여기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산토 도밍고 데 실로스 수도원이다. 1000년 된 담장과 돌로 된 길을 굽이굽이 돌면 수도원 입구가 나온다. 이 수도원은 게르만의 일파인 서고트족이 7세기경 세웠으나 아랍인들의 정복과정에서 파괴됐다. 그 후 가톨릭 사제이자 성인 산토 도밍고가 11세기 이후에 재건했다. 성인 산토 도밍고는 자신의 이름을 딴 도미니크 수도회를 열었는데, 사람들의 자비를 통해 음식을 얻으며 수도생활을 하는 탁발을 생활화하였다. 산토 도밍고는 기도 중에 환상 속에서 묵주를 계시받고, 이를 처음으로 사용하였고, 가톨릭에서 지금도 종교행사에 널리 쓰이게 되는 계기가 됐다.

산토 도밍고 데 실로스 수도원 가는 길. 필자 제공
수도원 입구에 있는 안내 표지판. 필자 제공
1605년 엘 그레코 作 기도하는 산토 도밍고(성 도미니크). © Museum of Fine Arts Boston.

산토 도밍고는 스페인의 궁정화가 엘 그레코가 좋아하는 주제 중 하나였다. 이 초상화에서 엘 그레코의 정제된 구도와 특유의 어두운 색감이 돋보인다. 산토 도밍고가 십자가 앞에서 엄숙하게 무릎을 꿇고 있는 영적인 강렬함이 느껴진다. 건축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맨 아래층에 있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회랑이며, 다양한 주제를 묘사한 다양한 조각품이 이중 기둥 위에 놓여 있는 아름다운 기둥머리가 있다. 기둥머리는 용, 켄타우로스, 격자, 인어 등을 상징하는 상징물들로 만들어졌다.

산토 도밍고 데 실로스 수도원 안마당. 필자 제공
산토 도밍고 데 실로스 1층 회랑 모서리에 있는 예수 부조상. 필자 제공

이 회랑의 모서리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장면을 묘사한 8개의 부조가 새겨져 있다. 더불어 천장에는 중세의 일상 생활을 묘사하는 14세기의 무데하르 양식으로 장식돼 있다. 지금의 회랑에는 아쉽게도 무슬림이 만든 정원이 없어졌고, 잔디를 심었다. 사이 사이에 프랑스 베네딕토회 수도사 중 한 명이 1882년에 심었다는 사이프러스 나무가 유명하다.

회랑의 천정에는 전형적인 무데하르 양식의 격자무늬가 있다. 필자 제공
수도원 회랑과 안마당. 필자 제공

이 수도원은 당시 은둔형 수도생활의 중심지이자 중세에 그랬듯이 식물학과 의학 지식의 요람이기도 하였다. 지금도 그 당시 쓰였던 약국 건물이 그대로 남아 위대함을 말해준다. 이 위대한 종교적인 걸작을 지은 산토 도밍고는 수도원 내 바위에 새겨진 석관에 영원히 잠들어 있다. 그리고 이 수도원은 스페인을 무슬림으로부터 되찾은 구국의 영웅인 엘 시드가 땅을 기부하였을 정도로 그 영적인 기운이 넘치는 곳이다. 영적인 기운을 받고 싶은 분은 꼭 한번 방문하시길 바란다.

이은진 스페인전문가·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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