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애초 음식이었다. 먼 옛날 에티오피아의 오로모족은 커피 열매를 동물 기름에 섞어 달여 먹었다. 커피 열매는 과육이 거의 없어 나무에 매달린 채 마르기 쉽고, 따라서 땅에 떨어져도 썩지 않고 남아 있는 게 많았다. 건기에 이들 열매를 주워 지방과 섞어 끓이면 부드러우면서 달곰하게 먹기에 좋았고, 에너지가 솟구쳤다.
지금의 수에즈운하를 두고 아프리카와 서남아시아를 오갔던 베두인들에게 커피는 생명과 같았다. 그들은 오아시스 간 거리를 계산해 밤에 이동했다. 잠이 들었다가 아침에 눈을 떠 뒤늦게 출발했다가는 중천의 해를 만나게 된다.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오아시스까지 이르는 길을 졸지 않게 이끌어 주는 커피는 생명과 같았다. 이런 사정은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에 극적으로 잘 묘사됐다.
기원후 7세기 이슬람의 탄생과 함께 커피는 수도승에게 금욕주의 실천을 돕는 소중한 도구가 돼 주었다. 성직자의 중재 없이 혹독한 고행을 통해 신을 직접 만나고자 했던 수피교도에게 커피는 식욕, 성욕보다 견디기 힘든 수면욕을 극복하게 해주었다. 그 흔적은 ‘수피댄스’로 이어지고 있다. 마울라위 종단의 본산인 터키의 콘야에는 세계 각지에서 수피댄스를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수피댄스는 터키어로 ‘세마(Sema)’ 또는 데르비시(Dervish)라고 불리며 2008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힘을 솟구치게 하고 각성을 통해 집중력을 높이는 커피의 위력은 전장에서 더욱 빛났다. 16세기 오스만튀르크가 이집트와 예멘을 공격하면서 발견한 커피는 금세 군대의 보급품이 됐다. 1683년 빈을 공격했다가 서둘러 퇴각하면서 산더미처럼 두고 간 커피 생두가 그 위세를 방증한다.
이슬람의 전유물이던 커피가 그리스도교 권역인 유럽으로 전해진 시기가 이즈음이다. 프랑스 귀족에게 커피는 더 이상 금욕을 실천하는 도구가 아니었다. 그윽한 커피를 유럽인들은 정서를 보듬는 데 활용했다. 정서와 정신에 영향을 끼치는 커피는 17세기를 거치면서 철학자들에게 사유를 깊게 하는 친구가 돼 주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계몽주의가 싹을 텄으며 마침내 절대주의가 무너지고 근대가 시작됐다.
커피의 위대한 힘은 링컨이 이끈 북군이 시민전쟁에 승리한 요인으로 꼽히면서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링컨은 1862년 남군 지역의 항구를 봉쇄해 커피가 남군에 공급하는 것을 막는 한편 북군에게는 하루에 1.8ℓ의 커피를 충분히 공급했다. 미국 공식문서에 커피 공급이 북군 승리 요인의 하나로 적시됐다.
이토록 소중한 커피. 세상에서 가장 좋은 커피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를 생각해 본다. 최근 군에 간 아들, 딸을 위해 커피를 보내고 싶다며 좋은 커피를 추천해 달라는 요청이 부쩍 많아졌다. ‘12·3 비상계엄 사태’에서 사기가 떨어질 것을 우려한 군인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이 느껴진다. 미국 국민배우 톰 행크스는 자신의 이름을 건 ‘행스커피(Hanx coffee)’를 만들어 최상의 커피를 군인에게 공급하고, 수익 전액을 퇴역군인을 위해 기부하고 있다. 미국의 알파커피(Alpha Coffee), 건몽키커피(Gun Monkey Coffee)도 유사한 사연을 담은 커피들이다.
우리도 군인이 마시는 커피의 질을 생각할 때다. 최상의 커피는 목숨을 걸고 국가를 지키는 군인들이 마셔야 마땅하다. 군인들이 마시는 커피의 질을 보면 그 나라의 애국심을 가늠할 수 있다고 커피 애호가들은 믿는다.
박영순 커피인문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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