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비 800억… 2028년 완공 목표
완성 땐 목조건축물 중 세계 최고
일각 “시민 공감대 얻는 일이 우선
과도한 전시 행정… 치적쌓기” 비판
세종시가 훈민정음 창제를 기념하는 높이 108m 목조 기념탑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한글문화도시 상징 명소로 조성·운영하겠다는 구상이지만 갈수록 악화하는 재정여건에도 치적쌓기에 매몰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세종시와 훈민정음기념사업회는 2026년 완공 예정인 세종시립박물관에 108m 높이, 28층 규모의 ‘훈민정음 창제 기념탑’(조감도)을 세우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 8월 세종시와 기념회가 관련 업무협약을 맺으며 관련 내용이 협의됐고, 같은해 12월 세종시가 한글문화도시로 지정되면서 속도를 내게 됐다. 올해 3∼4월 실시설계 용역에 들어가 2028년 완공이 목표다.
14일 시에 따르면 28층은 훈민정음 자모음 28자를 상징하고 108m는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이유를 설명한 훈민정음 ‘어제(御製) 서문’의 글자 수 108자를 의미한다.
기념탑은 관람객이 드나들 수 있는 한옥 형태로, 1층엔 훈민정음 자료를 전시하는 전시관이 들어서고, 꼭대기엔 전망대를 설치한다. 기념탑이 지어지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목조건축물이 된다. 현재 세계 최고(最高) 목조건축물은 미국 밀워키의 어센트 타워(86.6m)이다.
총사업비는 800억원 정도다. 세종시는 산림청에서 받은 국비 65억원을 포함, 시비 65억원을 매칭해 130억원을 투입할 방침이다. 나머지 670억원은 해외 동포와 국민 등을 대상으로 모금에 들어간다.
훈민정음탑건립조직위원회 명예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전날 세종시청에서 열린 ‘세종대왕 훈민정음 대상 시상식 축사’에서 “1000년 앞을 내다보는 세계 문자의 이정표가 되고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문화관광 명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민호 세종시장은 “훈민정음탑이 지어지면 민족의 자랑이자 세종시의 큰 브랜드가 된다”고 말했다.
김연식 훈민정음기념회 부회장은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수년 전부터 훈민정음 관련 자료를 수집해 현재까지 400∼500여점을 모았다”며 “훈민정음탑을 단순히 한글 상징탑이 아닌 훈민정음 창제부터 한글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역사적·배움의 공간으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념회 사무실에 이미 3m 높이의 훈민정음탑 모형을 만들어 해외를 돌며 홍보, 모금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모금액에 따라 탑 규모는 축소될 수 있다고 김 부회장은 설명했다.
일각에선 전시성 행정에, 세종시의 정체성을 ‘한글’로 과하게 이미지화한다는 지적을 제기하고 있다. 권선필 목원대 교수(행정학)는 “도시의 상징명소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이지만 과정에서 시민들의 공감대를 먼저 얻는 게 절차”라면서 “지방재정이 갈수록 악화하는데 한글기념탑 건립이 꼭 필요한 사업인지는 세밀하게 검토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세종시민 김한철(53·종촌동)씨는 “세종시 정체성은 행정수도이지, 한글수도가 아니다”라면서 “한글이 특정지역의 전유물이 될 이유도 없고 세종시의 도시마케팅을 넘어 과도하게 ‘한글’을 앞세우는 건 세종시가 한글도시라는 잘못된 정보를 줄 수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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