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재정 건전성, 교육 시스템 등 우수”
역사적 악연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프랑스 국민 10명 중 거의 9명이 이웃나라 독일에 대해 긍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와 눈길을 끈다.
14일(현지시간) dpa 통신에 따르면 주(駐)프랑스 독일 대사관은 여론조사 기관 CSA에 의뢰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조사는 2024년 11월28일부터 12월4일까지 18세 이상 프랑스 국민 1400여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응답자의 88%는 “독일에 대해 긍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인들은 특히 유럽의 강대국으로서 독일의 일자리(응답자의 89%가 긍정 평가)와 재정 건전성(84%)에 후한 점수를 줬다. 독일의 교육 시스템(87%), 경제(84%), 문화(76%), 외국인 관광객을 대하는 친절한 태도(75%) 등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다만 응답자의 67%는 독일 방문이나 독일인과의 교류에 있어 “독일어가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지적했다. 또 40%는 독일인에 대해 “다소 거만하다(arrogant)”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번 설문조사 결과를 놓고 슈테판 슈타인라인 주프랑스 독일 대사는 “독일은 프랑스에서 계속 아주 긍정적인 이미지를 누리고 있다”며 “프랑스 국민이 보기에 독일은 여전히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경제 및 정치 강국”이란 말로 만족스러움을 표시했다.
역사적으로 프랑스와 독일은 유럽 대륙의 패권을 두고 다툰 앙숙 중의 앙숙이었다. 나폴레옹(1769∼1821)이 황제이던 시절 프랑스는 군사력을 앞세워 유럽 대륙의 최강국으로 부상했다. 오늘날 독일 영토에 해당하는 지역도 나폴레옹이 쥐락펴락했다. 당시는 독일이 프로이센 등 여러 작은 나라로 분열돼 있던 때였다. 나폴레옹이 몰락한 뒤 복수심에 사로잡힌 프로이센은 군사력 양성에 나섰고 비스마르크(1815∼1898) 수상 시절에는 프랑스와 견줄 만한 국력을 갖췄다. 1870년 터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은 안팎의 예상을 깨고 프로이센의 압승으로 끝났다. 이를 계기로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하는 독일 통일이 이뤄졌다. 프랑스는 알자스와 로렌 두 주(州)를 독일에 빼앗기는 굴욕을 맛봤다.
20세기 들어 두 번 일어난 세계대전에서도 프랑스와 독일은 적으로 싸웠다. 1차대전(1914∼1918) 당시 ‘알자스·로렌을 되찾아야 한다’는 열망에 사로잡힌 프랑스는 엄청난 희생을 치르면서도 끝까지 전쟁을 수행했다. 결국 영국과 미국 등 다른 연합국의 도움으로 독일을 물리치고 알자스·로렌을 다시 품에 안았다. 반면 2차대전(1939∼1945)의 경우 프랑스는 히틀러(1889∼1945)가 이끄는 나치 독일의 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전쟁 초반인 1940년 6월 독일에 항복했다. 이후 프랑스에는 독일에 협조적인 ‘비시 프랑스’ 정권이 등장했으나 국방부 차관을 지낸 드골(1890∼1970) 장군은 영국으로 망명해 ‘자유 프랑스’라는 이름의 레지스탕스(저항군)를 조직했다. 덕분에 프랑스는 1945년 나치 독일이 패망했을 때 연합국의 일원이자 전승국으로 인정을 받았고 미국·영국·소련(현 러시아)과 더불어 독일 분할 점령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1959년 프랑스 제5공화국 출범과 더불어 드골이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자 그의 레지스탕스 이력을 들어 강력한 반(反)독일 정책을 펼 것이란 우려가 제기됐다. 하지만 드골은 민주주의 국가로 거듭난 독일(당시 서독)과의 협력을 결심하고 아데나워(1876∼1967) 총리와 만나 프랑스·독일 화해의 길을 모색했다. 그 결과 1963년 1월 파리에서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양국의 특수 관계를 규정한 엘리제 조약이 체결됐다. 이로써 프랑스와 독일은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가 되었고 현재 나란히 유럽연합(EU)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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