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은은한 불빛 아래에서, 사람의 움직임 역시 은은하고 완곡하다. 보고, 만지고, 자르고, 깎고. 시간의 리트머스를 통과하자 나무에서 어느덧 선명한 어떤 형상이 솟아오른다. 지극한 진리를 깨달은 자, 부처다.
‘속세로부터 떠나온 산’이라는 뜻을 가진 명산 속리산(俗離山)을 병풍으로 두르고 내려앉은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공방의 은은한 불빛 아래에서 매서운 눈빛으로 나무에 새겨진 부처의 형상을 깎아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충북 무형유산 기능보유자인 하명석 ‘목불조각장(木佛彫刻匠)’이었다.
하명석 목불조각장은 어린 시절부터 미술과 조각에 흥미가 있었고 남다른 소질을 보였다. 1975년 부산의 수원공예사에 입문하면서 목조각의 길을 걷게 됐고 4년 뒤 지리산 칠불암에서 당시 한국불교 조형미술 최고 권위자였던 청원 스님에게 교육받으면서 본격적으로 목불조각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1984년 우연히 법주사에 머물고 있을 때 주지 스님으로부터 보물 제916호인 ‘법주사 원통보전’을 보수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고 그 인연으로 속리산에 정착한 이래 41년째 이곳을 떠나지 않고 있다.
“목불조각가는 나무를 다루는 조각기술도 중요하지만, 불교 교리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그는 날카로운 조각칼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한다. “그냥 통나무에 단순히 부처의 얼굴을 새기는 게 아니라 그 속에 자비와 미소, 위엄을 함께 표현해야 합니다.”
목불조각은 크게 다섯 과정을 거친다. 나무 건조-걷목 치기-속 비우기-세목 조각(불상의 얼굴, 상호 표현)-불상 다듬기. 나무에 해야 하는 3단계의 크고 작은 끌질과 7회에 걸친 옻칠과 도금 등 모든 공정 하나하나가 수작업으로만 이루어진다.
목불조각은 거의 주문에 의해서 제작되고 있다. 정교함이 요구되는 세밀한 조각 작업을 위해 조각장은 수십 종의 끌과 조각칼 등 작업 도구를 본인의 손에 맞게 직접 제작해 사용한다. 목불은 짧게 6개월, 길게는 1년 이상 걸쳐 제작된다. 조계종 울산 한마음선원에 있는 ‘목탱화’는 3년 넘게 작업해 완성했다. 세밀한 작업이 필요한 얼굴 조각에만 2~3개월이 소요된다.
“전국에 사찰이 많이 줄었고 목불조각 자체에 대한 세상의 관심이 부족하니 주문량도 많이 줄었습니다. 오로지 수작업으로 해야만 하는 조각일은 힘들고 노력한 만큼의 보상이 적으니 생계의 어려움을 겪어 배우려는 사람이 없습니다.”
어려움이 있어도 반드시 목불조각의 전통을 이어가고 지켜나가겠다는 목불조각장. 결의가 담긴 그의 말이 속리산의 구비구비 자락을 따라오르더니 기어이 하늘로 넘실거리기 시작하는데….
“다행히 손재주가 좋은 딸 지민(38)이 전수 장학생으로 배우고 있어 기특하고 다행입니다. 목불조각뿐 아니라 우리의 전통문화 예술 뿌리인 무형유산의 보존과 전승을 위한 국가 차원의 대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전통은 현대의 거울이요 미래의 힘입니다. 항상 수행하는 마음으로 정진해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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