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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빨리” 딸의 마지막 전화…거제 원룸서 무슨 일이 [사건 속으로]

입력 : 2025-01-28 23:20:00 수정 : 2025-01-28 23:3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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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前여친 교제폭력 사망 사건
20대男, 원룸 침입 뒤 30분간 폭행…결국 사망
사건 현장서 잠들기도…“더 좋은 여자 만날 것”
1심 “초범 고려” 징역 12년…2심서도 혐의 부인
유족 “엄벌해야”…살인죄 혐의 변경 강력 촉구

“내 딸은 세상을 떠났는데 가해자는 고작 30대에 출소한다니 이게 말이 됩니까?”

전 남자친구에게 폭행당해 숨진 이효정씨의 생전 모습. 오른쪽은 지난해 4월1일 사건 당일 경남 거제의 한 원룸에서 이씨가 응급실을 가기 위해 얼굴을 감싸쥐고 나온 모습. MBC 실화탐사대 방송화면 캡처

 

지난해 4월1일 오전 이효정(당시 19세)씨의 어머니는 “엄마, 빨리 와줘”라는 딸의 오열하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무슨 일이냐”는 다급한 엄마의 물음에 이씨는 전 남자친구인 A(20)씨에게 심하게 폭행을 당했다고 털어놨다. 급하게 응급실로 이송된 이씨는 처치실에서 “엄마, 나 살 수 있지”라는 말을 힘겹게 내뱉었다고 한다. 이씨는 열흘 뒤인 4월10일 머리 손상에 의한 전신 염증반응 증후군으로 사망했다. 경상남도 거제시 이씨의 원룸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거제의 한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이씨와 A씨는 2022년부터 3년 넘게 만남과 이별을 반복한 사이였다. 사건 발생 당시에는 이미 헤어진 상태였다. A씨는 이씨를 따라 같은 대학교 같은 과에 진학한 뒤 아르바이트 장소에 찾아와 항상 지켜보는 등 사귀는 내내 집착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교제 기간 수차례 다퉜던 두 사람은 2022년 12월부터 해당 사건까지 총 12건의 데이트 폭력 관련 신고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A씨 폭행으로 이씨에게 스마트워치가 지급된 사건도 있었으나 대부분의 신고는 서로 처벌을 원치 않아 종결됐다.

 

사건 당일 오전 8시쯤 술에 취한 A씨는 이씨 주거지인 거제의 한 원룸에 미리 알고 있던 비밀번호를 누르고 무단 침입했다. 그는 자고 있던 이씨의 머리와 얼굴 등을 주먹으로 수차례 때리고 목을 조르는 등 30분간 무차별 폭행을 이어갔다. 자기는 만나주지 않으면서 왜 다른 친구들과 술을 먹었냐는 게 이유였다. 그는 이씨의 자취방에서 범행 후 이씨가 응급실로 이송된 뒤에도 떠나지 않고 그 방에서 태연하게 잠을 잔 것으로 알려졌다.

전 남자친구에게 폭행당한 이씨의 피해 모습. JTBC 보도화면 캡처

 

폭행당한 이씨는 외상성 경막하출혈 등으로 전치 6주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던 A씨는 4월10일 고열과 함께 갑작스레 상태가 악화했고, 당일 오후 10시18분 숨졌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이씨의 사망원인이 패혈증에 의한 다발성 장기부전이라는 1차 부검 소견을 밝혔다. 이씨의 사망이 A씨의 폭행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취지였다. 이후 경찰이 국과수에 조직 검사 등 정밀 검사를 의뢰했고, 2차 부검 결과 이씨 사인은 A씨 폭행에 의한 머리 손상인 것으로 드러났다.

 

부검 결과를 토대로 경남경찰청은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해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지난해 5월20일 법원은 “도주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당시 A씨는 신변 노출 우려와 심리적 압박 등을 이유로 예정된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지 않았고, 법원은 서면 심리를 거쳐 영장을 발부했다.

 

이씨 어머니는 영장실질심사 전 “가해자는 잘못을 인정하거나 반성하지 않고 유흥을 즐기며 거리를 활보하고 있지만 제 딸은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한 채 차디찬 영안실에 누워 있다”며 “수사당국은 피해자와 유족이 피를 흘리고 있는데 가해자 인권만 지켜주고 있다”고 오열하기도 했다. A씨는 당시 이씨가 사망한 사실을 알면서도 지인들에게 “여자친구랑 헤어졌다”, “더 공부 잘하고 더 좋은 대학 가서 더 좋은 여자를 만날 것이다” 등의 말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 여자친구를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20대 남성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이 지난해 5월20일 경남 통영시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에서 열린 가운데 피해자 유가족이 영장실질심사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통영=뉴스1

 

지난해 11월14일 1심 재판부는 A씨에게 검찰 구형량인 징역 20년보다 낮은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창원지법 통영지원 형사1부(부장판사 김영석)는 상해치사 및 스토킹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하고, 40시간의 스토킹 치료 프로그램 이수를 명령했다.

 

1심 재판부는 “건장한 성인 남성인 피고인은 잠을 자고 막 깨어난 피해자 목을 누르거나 주먹으로 때리는 등의 수법으로 상해를 가했고, 결국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 피해자는 19세의 젊은 나이에 자신에게 펼쳐진 앞날을 경험해 보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다만 피고인이 살인죄로 기소된 것이 아니고, 교제를 중단하려는 피해자에게 보복할 목적으로 계획한 범죄 같아 보이지 않는다. 피해자와의 감정 대립 중 극도로 흥분한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일어난 것으로 보이는 점을 고려했다”며 “A씨가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초범인 점, 법정에서 죄책감을 느끼며 자기 행동을 후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판시했다.

 

이 같은 판결에 이씨 어머니는 재판 직후 “우리 딸은 이미 세상에 없다. 그런데 가해자는 여전히 살아있다. 징역을 살고 나와도 쟤는 30대밖에 안 된다”며 울음을 터트렸다. 이후 A씨는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 양형 부당을 이유로 항소했다. 검찰은 “형이 가벼워 부당하다”며 항소했다.

 

지난 22일 열린 항소심에서도 A씨는 혐의를 부인했다. A씨 측 변호인은 “상해치사와 관련해서는 사망에 대한 예견 가능성이 없었고, 스토킹 범죄와 관련해서는 스토킹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형도 무거워 부당하다”고 항소 이유를 밝혔다. 이에 이씨 측 변호인은 “건장한 체격의 남성이 여성의 두부를 30분 동안 가격했을 경우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점은 누구나 예견할 수 있는 사실로, 피고인에게 적용되는 죄명에 대해 숙고해달라”며 재판부에 상해치사가 아닌 살인죄로 변경해 엄벌을 내려달라고 요구했다. 다음 공판은 3월5일 열릴 예정이다.


김수연 기자 sooy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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