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마션’이라는 흥미로운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이 영화는 주인공이 예기치 못한 사고로 화성에 홀로 남겨졌는데, 열악한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어려운 과제들을 하나씩 풀어 결국 지구로 귀환한다는 이야기이다.
이와 유사하게 우리나라에는 1980년대부터 원자력계를 넘어 국가적 난제로 남아 있는 사용후핵연료 문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원자력 이용국은 핀란드, 스웨덴 등과 같이 사용후핵연료를 직접 처분하든 아니면 프랑스, 일본, 중국 등과 같이 재처리 후 처분을 하든 간에 고준위방사성폐기물 문제를 공통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해 현재의 과학기술수준에서 가장 타당한 해결책은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을 지하 500m의 안전한 장소에 격리 후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사람으로 치면 생을 마치고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무덤을 만드는 일과 같은데 우리나라의 경우 바로 이 무덤이 아직 준비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럼 어디서부터 또 무엇부터 이 어려운 문제를 풀어야 할까?
우리보다 앞선 주요국의 성공사례를 살펴보면 그 해법에 대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국제적으로 공인된 해법의 출발점은 구체적이면서도 실증적인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수단인 일반부지 지하연구시설의 구축과 활용에 있다는 것이다. 사용후핵연료 처분의 과정을 살펴보면 일반부지 지하연구시설에서 풍부한 연구결과를 토대로 부지 선정, 부지 실증, 건설 그리고 운영 과정을 거치게 된다. 따라서, 최근 확정한 태백의 일반부지 지하연구시설은 사용후핵연료라는 오래 묵은 문제에 대한 첫 번째 과제를 풀 수 있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해외 주요국의 상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최근 유럽연합(EU) 그린 택소노미 등의 영향으로 고준위방사성폐기물처분장 마련을 위한 행보는 한층 더 빨라지고 있다. 핀란드는 온칼로부지에서 처분장을 완공 후 운영을 앞두고 있고, 스웨덴은 건설허가를 득한 후 착공을 앞두고 있으며, 프랑스는 지난해 규제기구인 ASN에 인허가를 신청하여 서류적합성 심사를 통과한 바 있다.
이 밖에도 스위스는 부지 선정을 완료했고, 캐나다도 금년말까지 부지 선정을 마칠 계획이며 영국도 부지 선정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처분장 선정에 필요한 과학기술적 데이터를 확보하고 처분 안전성과 관련한 다양한 요소기술들을 실증하기 위해 일반부지 지하연구시설을 단계적으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최근 인허가를 신청한 프랑스의 경우 부르(Bure) 지하연구시설에서, 스위스의 경우에도 두 개의 연구시설에 연구를 수행한 후 그 결과를 토대로 부지 선정에 성공할 수 있었다.
또한, 지하연구시설은 방사성폐기물 분야를 넘어 지질학, 고고학 등 학술적 활용가치도 매우 높다. 본 시설을 유치한 태백시에는, 건설에 투입되는 약 5000억원 이상의 직접적인 경제적 효과 이외에도 구축 이후 최고 수준의 전문가와 인재들의 유입, 각종 학술대회 및 관련 행사 개최 등으로 간접적 경제효과도 유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스위스의 그림셀, 일본의 호르노베 시설의 운영실태를 참고하면 주요 과학기술자, 엔지니어 등의 빈번한 방문을 통해 국제공동연구의 중요한 명소로서 지방자치단체의 브랜드가치도 함께 상승할 것이다.
박홍준 동국대 WISE캠퍼스 스마트시티융합대학 혁신원자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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