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문제 심각… 의사진단 뒤 처방”
교사들이 매일 약 꺼내주고 일지 써
일각 “장기복용 틱·녹내장 부작용
어린이 성장 지연 등 문제 우려도”
전문가 “정서 지원이 우선시돼야”
울산 울주군의 한 아동양육시설에는 영아 5명, 미취학 아동 12명, 초등학생 42명, 중학생 34명, 고등학생 14명 등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 107명이 산다. 이들은 16개의 방에 나뉘어 생활하는데 방마다 특이한 금고가 하나씩 있다. 아이들의 약통 금고다. 금고에는 아이들이 매일 먹어야 하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약이 들어 있다.
매일 약을 꺼내 먹는 아이는 60명. 시설에서 보호 중인 아이 10명 중 6명가량이 매일 ADHD 약을 복용하는 것이다. 해당 시설 관계자는 “교사들이 약을 꺼내 매일 아이들에게 주고, 복용일지를 작성한다”며 “약을 아침에 먹는 아이, 저녁에 먹는 아이 등 먹는 시간과 복용량은 제각각”이라고 전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있는 걸까. 22일 울산시와 해당 시설에 따르면 ADHD 약을 매일 복용 중인 60명은 대다수 아동학대 등을 겪고 시설에 입소한 아이들이다. 시설 측은 “최근 입소한 아이 60∼80%가 아동학대 등의 이유로 들어왔다”며 “불안 등 정서적 문제가 심각하다 보니 치료약을 복용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동학대 등 가정에서 버림받은 많은 아이들이 환경적인 어려움과 함께 정신적으로도 큰 상처를 받고 있다는 의미다.
ADHD 약물은 의사의 진단 후 처방이 가능하다. ADHD 진단은 만 5세 이상에서 이뤄진다. 의학적으로 유의미한 진단은 만 7세 이후에 가능하다. 해당 시설 관계자는 “입소 후 일정 기간 동안 아이의 행동을 지켜본 뒤, 우울감이나 분노 조절 장애 등의 문제를 보이면 심리 상담 교사와 논의한 후, 의료기관에서 종합 검사를 받게 한다”고 말했다. 이어 “검사 결과에 따라 의사 진단을 거쳐 약물 치료 여부를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보호시설 아이들이 ADHD 약물 치료를 받고 있는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ADHD 약물은 장기간 다량 복용할 경우 틱 장애와 녹내장, 신경계 이상반응, 환각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어린아이들이 먹게 되면 성장이 지연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차정화 전국돌봄노조 울산지부장은 “약물 오남용의 위험도 존재하는 만큼 무조건적인 ADHD 약물 처방보다는 아이들의 정서적 지원이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해당 시설 관계자는 “ADHD 진단을 받는 아이들이 증가함에 따라 보다 전문적인 지원과 기관의 설립을 관계 기관에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0년 보고서에 따르면 아동복지시설에서 보호하고 있는 아이의 69.9%가 ADHD,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우울증, 학습장애 등의 증상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학대 등으로 인해 아동복지시설 내에 이런 증상을 보이는 아이의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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