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따지는 변호사/ 이재훈/ 예미/ 1만9000원
요하네스 베르메르(1632∼1675)가 1665년 그린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진주 귀걸이가 반짝이는 매혹적인 그림으로 세심한 붓놀림, 빛의 이용이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네덜란드의 모나리자’로 불릴 정도. 스스로 ‘그림을 따지는 변호사’라 말하는 저자는 이 작품 속 귀걸이가 귀금속인지 보석인지를 따지고 든다. 진주에 대한 법적 근거 등을 세밀히 살펴 ’진주는 귀금속이 아니며, 귀금속을 활용한 가공제품인 ‘귀금속 제품’도 아니라고 말한다.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1840∼1926)가 1872년 그린 ‘세발자전거를 타는 아이’는 아들 장 모네가 집 정원에서 자전거를 탄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세발자전거는 우리나라 법 규정상 자전거라고 보기 어렵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구동장치와 정지시킬 수 있는 제동장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림 따지는 변호사’는 저자가 직업 본능을 살려 미술 작품을 중심으로 여러 예술가의 일화나 작품에서 출발해 다양한 법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다. 세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예술작품도 법과의 연결고리를 결코 끊을 수 없다는 것. 작품 안이나 밖에 얽혀 있는 여러 사정을 법적으로 한번 따져보는 흥미로운 책이다.
저자는 어느 전시회에서 페테르 파울 루벤스(1577∼1640)의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듣다가 작품 속 상황을 우리 시대 법으로 판단한다면 어떻게 될까 따져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단다. 곧장 서점으로 달려가 클래식 잡지들을 사들였고, 잡지에 실려 있는 작품들에 법리 적용을 해봤다. 책은 이렇게 시작해 잡지에 기고하게 된 ‘이재훈의 예술 속 법률 이야기’ 칼럼들을 토대로 했다.
미혼이었지만 사후 양육비 소송이 14건 제기됐다는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의 이야기로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짚는 등 최근 사회적 이슈와 연관된 내용들도 흥미롭다. 유명 화가의 그림 속에 숨어 있는 사소하면서도 심각한 법 이야기가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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