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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나의 첫 임종체험 후기’ 전석순 …“마지막 페이지 덮으며 삶과 죽음 고민하는 계기 되길” [창간36-제21회 세계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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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2-02 21:00:00 수정 : 2025-02-02 21:3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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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에 쓴 단편을 장편으로 개작
주인공 네 명 둘러싼 관계로 넓혀

죽음에 대한 고민으로 혼자 앓는
누군가에 치유의 방향 제시 기대

경계에서 괴로워하는 많은 이들
온전하게 담는 소설 계속 쓰고파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독자에게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된다면, 또 각자가 ‘나의 첫 임종체험 후기’를 써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면 이 소설이 아주 약간의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장편 소설 ‘나의 첫 임종체험 후기’로 2025년 세계문학상을 거머쥔 전석순(41) 작가는 이 작품이 독자에게 어떻게 가닿았으면 하느냐고 묻자 이같이 답했다.

 

장편 소설 ‘나의 첫 임종체험 후기’로 제21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전석순 작가가 지난달 21일 세계일보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최상수 기자

작품은 그가 2022년 한 웹진에 ‘그저 빛’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단편을 장편으로 개작한 작품이다. 단편에서 임종체험관에서 일하는 한 인물을 중심으로 했던 이야기는 네 명 주인공을 둘러싼 관계들로 확장됐다. 지난해 꼬박 10개월을 들여 장편을 완성했다고 한다.

그는 2008년 신문사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으로 등단한 뒤 이미 몇 권의 책을 출간한 기성작가다. 지난달 21일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난 전 작가는 출간계약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뚝심 있게 장편 원고를 써내려 갈 수 있었던 건 작가로서 이 작품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꼭 이번 공모 기회가 아니라도, 몇 년 후에라도 이 소설이 독자들과 만나게 되겠다는 믿음이 있었다”며 “수상을 한 덕택에 생각보다 그 기회가 빨리 찾아와 기쁘다”고 말했다.

―작품 아이디어는 어디서 왔는지.

“누군가 상담심리사를 찾아가 ‘사람들이 보통 하루에 몇 번 정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나요? 몇 번 정도이면 정상인가요?’라는 질문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상담사는 ‘보통은 그런 생각을 안 하죠’라고 답했다고 해요. 물음을 던진 사람은 그제서야 ‘누구나 매일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겠지’ 하고 넘겨짚었던 자신에게 문제가 있으며 치료를 받아야겠구나 하고 깨달았다고 해요. 그 질문을 입 밖으로 내본 후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됐다는 거죠. 소설을 쓰며 이 일화를 종종 떠올렸어요. 제 소설을 통해 죽음에 대한 고민으로 혼자 끙끙 앓고만 있던 누군가가 치유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걸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어찌 보면 그게 문학의 역할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고요. 이런 에피소드도 있었어요. 서울에서 작업실을 구할 때의 일인데, 중개인이 가격에 비해 집 상태나 위치, 주변 시설 모든 게 너무 좋은 방을 소개해 준 적이 있어요. 누가 채가기 전에 계약을 해야지 마음먹고 무심코 창문을 열어봤는데, ‘장례식장’이란 글자가 커다랗게 보이더군요. 그래서 싸게 나온 집이었던 거예요. 저부터도 찜찜해서 계약을 못 했거든요. 오래된 일인데도 이 소설을 쓰기 전에 이 기억이 떠오르며 하나의 계기가 됐어요. 우리는 너무 당연하게도 죽음은 찜찜한 것, 멀리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사람을 좀 보듬을 수는 없을까 하는 아이디어로서요.”

―몇 년 전 쓴 단편을 개작한 경위는.

“처음 단편을 구상하며 인물들이 어느 장소에서 만나면 가장 낯설고 뜨악한 상황이 만들어질까를 고민했어요. 좋아하는 사람이든 해를 가하고 싶을 만큼 미워하는 사람이든, 가족이든 연인이든 임종체험관에서 만나면 굉장히 불편하겠다는 착상에 이르렀어요. 단편을 쓸 때는 만약 성추행 피해자가 상처를 막 극복하고 있는데, 자신의 일터인 임종체험관에 가해자가 찾아온다면 이들의 관계가 아주 입체적이고 복잡하게 펼쳐질 거라고 구상했어요.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들까? 가해자가 환심을 사기 위해 일부러 찾아왔나 하는 의심을 품게 될까? 그렇게 나온 게 ‘그저 빛’이라는 단편이었어요. 발표하고 시간이 한참 지난 다음 다시 생각해 보니, 그런 관계가 꼭 성추행 피해자와 가해자뿐만은 아니겠다는 걸 알게 됐어요. 내가 돌봐야 하는 치매환자 모친이, 혹은 한때 절친한 사이였지만 어느 순간 채무 관계로 얼룩진 사람이, 또는 뜻하지 않게 어긋난 옛 인연이 임종체험관으로 찾아온다면 이 단순하게 정의내릴 수 없는 새로운 관점의 관계가 형성되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확장해서 바라보면 우리 사회 속 많은 관계를 보다 다양한 시선으로 다룰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사실 장편에서 다룬 네 가지 관계 유형은 우리 사회에서 깊이 주목해 봐야 할 관계이기도 하거든요. 지금 이 순간 사회에 정말 필요한 이야기이고, 하고 넘어가야 제 작가인생에도 필요하겠다고 판단했어요.”

―독자와 함께 공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는지.

“아마 임종체험을 해보지 않은 분들이 훨씬 더 많으실 거예요. 체험을 불편해하거나, 체험관 장소 주변까지도 꺼리는 경우도 많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소설을 쓰기 위해 자료조사를 할 때 보니 대부분의 임종체험관이 산속이나 외진 곳에 있더라고요. 저는 독자가 첫 임종체험 후기를 써보기를 제안하는 마음으로 썼어요. 제목을 ‘나’의 임종체험 후기라고 지었지만, 사실 이 소설에서 ‘나’는 등장하지 않아요. 독자가 죽음에 대한 고민을 ‘나’의 문제로 읽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제목이에요.”

1983년 강원 춘천에서 태어난 그는 명지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대학 4학년 2학기 때 2008년 강원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2011년 첫 장편 ‘철수 사용 설명서’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문학적 삶의 여정에 대해 말해 달라.

“부모님이 춘천에서 세탁소를 하셨어요. 세탁소에 딸린 단칸방에서 유년기를 보냈어요. 부모님이 일하시는 동안 좁은 방에 누워 있으면 옷이 쭉 걸려 있는 모습이 보였어요. 그걸 보면서 이 양복을, 이 원피스를 입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하며, 아주 어린 나이지만 타인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 같아요. 시 습작을 하던 중학생 시절을 지나 고등학교에 진학했는데 마침 훌륭한 문예부가 있고 등단한 작가 출신의 선생님들이 계셔서 작품을 써서 보여드릴 수 있었어요. 큰 행운이었어요. 2000년 6월 야간자율학습을 하던 어느 날 밤 처음으로 소설을 써봐야 되겠다 하고 쓰기 시작했던 게 기억나요. 영화 한 편을 봐도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사람인데, 소설을 쓸 때는 3시간 정도 한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겠더라고요. 특기자로 문창과에 진학했고, 운 좋게도 대학 문학상을 간간이 타서 ‘내 소설이 아예 말이 안 되는 건 아닌가 보다. 내가 소설이라는 걸 쓰고 있기는 한가 보다’라는 생각으로 준비를 하다가 신춘문예에 당선됐어요. 좋아하는 일이니까 평생 쓰긴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스물아홉 여름에 오늘의 작가상을 받고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주중에는 소설을 쓰고 주말에는 문창과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 실기지도를 병행하죠.”

―작가로서의 포부와 계획을 들려 달라.

“그간 쓴 소설들을 돌이켜보니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써왔더라고요. ‘철수 사용설명서’에서는 정상과 비정상 경계에서 헤매고 흔들리는 인물에 대해서 쓰려 했어요. 사실 그 기준은 없는 것일 수도, 모호한 것일 수도 있고 매몰될 필요가 없는 건데. ‘거의 모든 거짓말’(2016)에선 진실과 거짓말의 경계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번 소설의 임종체험관은 산 사람이지만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들, 삶과 죽음 경계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 나와요. 앞으로도 우리 사회의 너무도 많은 경계에서 괴로워하고 비틀거리는 인물들을 가장 온전한 방식으로 담는 소설을 계속 쓰고 싶어요. 경계에 놓여 쓸쓸한 곳에 우리의 관심 밖에 있거나 놓치고 있는 인물들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봐요.”

춘천에서 나고 자란 작가는 지금도 춘천에 산다. 도내 문창과가 없던 강원을 떠나 서울로 향하던 스무살 적에도 실은 춘천을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그에게는 춘천에서의 생활이, 소설 쓰는 인생을 오래도록 살기 위한 최적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소설을 쓰는 건 제게 즐겁고 행복한 일이지만 그래도 편안하지 않을 때가 있어요. 갈등을 다뤄야 하니 긴장상태에 놓이게 되고, 제 자신이 그 갈등에 빠져야 할 때도 있고요. 그런데 현실에서까지 갈등 상황에 놓이면 더 힘들어져요. 춘천이란 공간은 제게 긴장이나 불편함을 주는 공간이 아니에요. 춘천의 모습이 변한다 해도 그 변화의 이력은 이미 제가 꿰뚫고 있고요. 거기에서 오는 안정감이 제게 가장 좋은 작업 환경이에요.”


이규희 기자 lk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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