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주체사상과 관련된 이적 표현물을 소지하고 이를 유포한 혐의로 기소됐던 노동자들이 13년 만에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전주지법 형사5단독 박상곤 판사는 국가보안법 위반(찬양·고무 등) 혐의로 기소된 현대자동차 노동자 A(53)씨와 B(61)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24일 밝혔다.
A씨와 B씨는 2006년부터 2010년까지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조합원과 간부로 활동하면서 북한 주체사상을 기반으로 한 사회주의 혁명론, 반미자주화, 민족해방 인민주의 혁명(NLPDR) 등을 주장하는 문서를 소지하고 조합원들에게 배포한 혐의로 2012년 기소됐다.
A씨 등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생산직 사원으로 입사해 1996년 전주공장으로 발령받은 뒤 2012년까지 생산직 등에 종사했다. 또 2000년대부터 ‘전주자주노동자회’, ‘민주노동자 전국회의 전북지부’ 등 노동자 조직에서 의장, 총무부장 등 간부로 활동했다.
이들이 소지한 문서에는 ‘한반도에서 미제를 몰아내고 민주적인 법 제도를 개선해 자주 통일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정권과 자본의 야만적인 수탈과 탄압에 맞서 전면적인 투쟁에 돌입해야 한다’ 등의 문구와 선전물이 포함돼 있었다.
검찰은 이 문서가 북한 김일성 주체사상의 핵심 원리인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담고 있으며, 국가의 존립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이적 표현물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이들이 이적행위를 목적으로 해당 문서를 소지하고 유포한 행위는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번 판결에서 2010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례를 인용, 피고인들이 소지한 문서가 이적행위에 대한 ‘목적성’을 증명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취득·소지·반포한 문건에 한미연합 군사훈련 반대,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폐지 등 북한이 자주 쓰거나 주장한 내용이 담겨 있으나, 북한 체제나 선군정치 등을 맹목적으로 찬양하거나 동조하는 내용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또한, 피고인들이 속한 조직의 강령이 다른 합법적 노동조합의 활동과 다르지 않으며, 반국가단체 구성원과 접촉하거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행위도 드러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당시 피고인들의 정부의 정책과 배치되는 주장을 담은 문서를 소지·탐독한 행위는 노동운동 내에서 이례적이지 않다”며 “따라서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들의 이적행위 목적성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결론 내렸다.
13년에 걸친 치열한 법정 공방 끝에 무죄를 선고받은 노동자들의 이번 사례는 국가보안법 적용에 있어 ‘목적성’ 입증의 중요성을 다시금 부각시키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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