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한국인의 ‘화약고’ 명절 갈등…모이면 ‘화병’ 터진다 [건강+]

, 이슈팀

입력 : 2025-01-25 20:00:00 수정 : 2025-01-25 18:00:31

인쇄 메일 url 공유 - +

시어머니 눈치 보느라 우울한 며느리
MZ 며느리에 울화통 터지는 시어머니
‘부글’ 끓어오르는 화병, 방치하면 큰일
약물, 한방, 지압법 등으로 치료 가능
“치료 넘어 스트레스 내성 키우는 노력”
명절 전후 며느리와 시어머니 간 스트레스 등 화병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은 가운데, 최근엔 고부 관계에 변화가 오면서 시모들 사이에서 증상이 잦게 나타나곤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결혼 5년차인 30대 후반 김다연씨(서울시 영등포구)는 길어진 설 연휴 탓에 명절 전부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27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되면서 예정보다 더 일찍 시댁에 내려가게 생겼기 때문이다.

 

김씨는 “원래 설 전날 서울역에서 부산 시댁에 내려가는 기차표를 예매했는데 27일이 휴일이 되면서 26일에 내려가게 됐다”며 “온 가족의 끼니부터 설거지, 청소를 할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속에서 천불이 난다”고 토로했다.

 

경기도 안양시에 거주하는 60대 후반 이연화씨는 설 연휴 며느리를 볼 생각에 며칠째 잠을 설치고 있다. 제사 준비나 집안일에 참여하지 않는 며느리와 싸우고 싶지 않아 참았지만, 오히려 손자 케어마저 자신의 몫이 돼버렸다.

 

이씨는 “며느리와 마주치지 않는 게 낫겠다 싶어 명절에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도 연휴 내내 내려와 있다”면서 “제사 준비는 돕지 않으면서 손자를 맡기고 아예 나가서 놀다 오는데 울화통이 터질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명절 전후 가족 간 불화나 갈등, 가사 노동 등에 대한 스트레스로 ‘화병’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화병은 만성적 스트레스나 일시적인 스트레스를 해소하지 못해 생기는 각종 정신적 증상, 신경증, 신체질환을 일컫는다.

 

가슴 답답함과 두근거림, 치밀어 오름, 열감, 두통, 불면증 등의 신체적 증상이 나타난다. 치료가 필요한 적응장애 혹은 불안이나 우울장애로 진단돼 입원하는 사례도 있다. 심할 경우 만성적인 분노로 인한 고혈압, 뇌졸중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25일 강승걸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화병은 신체증상을 동반하는 우울증의 일종으로 ‘화’라는 것은 불을 의미한다”며 “과거에는 며느리들에게서 특징적으로 나타났으나, 요즘 고부 관계상 명령-복종 위계질서가 약해지는 등 시모와 며느리 간 역학관계에 변화가 오면서 명절 전후 시모들 사이에서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도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명절 증후군을 앓는 며느리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화병의 원인은 억울하고 분한 감정이다. ‘참는 게 이기는 것’이라는 표현처럼 한국 특유의 문화와 연관된 증후군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위계질서를 미덕으로 여기는 한국 사회에서는 직장 상사나 동료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전달하기 어렵거나, 심지어 가까운 가족들에게도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해 속으로만 고민을 쌓아두고 끙끙 앓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한한방신경정신과학회 화병연구센터에 따르면, 화병은 보통 분노기, 갈등기, 체념기, 증상기 등 4단계에 거쳐 발생한다.

 

분노기는 화를 직면했을 때 화가 치밀어 오르는 시기다. 분노가 치미는 증상이 특징이고 몇 분 혹은 며칠이 지나면 끝난다. 갈등기는 분노기를 지나 분노를 해소하는 시기에 나타난다. 고민이 많고 불안하거나 쉽게 놀라는 등의 정신적인 증상을 호소한다.

 

체념기는 분노를 억제하고 참는 생활을 지속하는 단계다. 감정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에 같은 스트레스를 겪을 시 또 다른 증상으로 연결되거나 우울한 기분에 빠지기 쉽다. 마지막 증상기는 오랫동안 억울함을 느껴 나타나는 분노와 우울, 불안 등의 증상이 많다.

 

김윤나 경희대한방병원 한방신경정신과 교수는 “화병 환자 중 증상기가 가장 많다고 보고됐다”면서 “화병 증상엔 특별한 외상이 없어 가볍게 여겨 방치하다가 신체적 증상이 나타나서야 뒤늦게 병원을 찾는 환자가 많다”고 말했다.

 

화병의 주요 증상으로는 답답함과, 가슴 두근거림, 피로, 두통, 우울감, 불면증 등이 나타난다. 게티이미지뱅크

 

만약 답답함과 열감, 두통, 불면증 등의 증상이 나타나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준다면 이른 시일 내 병원을 찾는 것이 좋다.

 

현대의학에서는 약물치료와 정신치료가 병행된다. 약물치료로는 항우울제나 항불안제가 주로 사용된다. 해당 약물이 세로토닌이나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 등의 신경전달물질을 정상화시켜 증상이 개선되는 효과다.

 

정신치료는 환자의 정서적 어려움에 대한 공감과 스트레스 대처법 지도, 대인관계 변화 등을 통해 증상 개선을 유도한다.

 

한의학에서는 침, 뜸 등 한방요법을 주로 활용하는데, 지압법을 통해서도 단기적으로 증상을 개선할 수 있다.

 

스트레스를 오래 받으면 머리를 받치는 근육이 긴장돼 긴장성 두통이 생기기 쉽고 뇌로 가는 혈류를 방해하기 쉽다. 이때 ‘풍지혈’을 지압해주면 좋다.

 

풍지혈은 뒷목과 머리가 이어지는 곳의 움푹 들어간 부위다. 이 부위를 엄지손가락으로 지그시 누르고 나머지 손가락으론 뒷머리를 감싸서 고개를 천천히 움직여주면 근육이 풀리는 데 도움이 된다.

 

불안감이나 초조함, 가슴의 답답함을 느낄 때는 흉골 중앙에 있는 ‘전중혈’을 지압해 긴장을 완화하는 것이 좋다.

 

김 교수는 “불안하거나 초조하면 교감신경이 과활성화되면서 흉곽 상부의 근육들이 긴장하고 어깨가 올라가며 가슴이 움츠러드는 자세가 된다”면서 “이런 자세는 스트레스 반응을 강화시킬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단순히 증상을 없애는 것을 넘어 환자 스스로 스트레스를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강 교수는 “부정적인 감정이나 억울함을 억누르기만 하면 화병 증상이 악화될 수 있으므로 자신의 감정을 언어로 차분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규칙적인 생활습관과 운동, 충분한 수면이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을 키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윤진 기자 soup@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블랙핑크 지수 '여신이 따로 없네'
  • 블랙핑크 지수 '여신이 따로 없네'
  • 김혜수 '눈부신 미모'
  • 유인영 '섹시하게'
  • 박보영 '인간 비타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