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질병, 흡연 외 다른 요인에 의해 발생할 수도”
10년째 이어지고 있는 소송이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과 담배회사가 벌이고 있는 ‘담배소송’이다. 공단은 회사들에 담배로 인한 사회적 문제에 책임지라며 이 소송을 제기했는데, 흡연과 폐암 사이 관계가 법정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이달 15일 오후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담배소송’ 항소심 11차 변론기일에 원고 측 당사자로 출석했다. 그는 담배와 폐암의 직접적 인과관계를 강조하며 담배회사가 질병의 발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이사장은 공단은 2014년 흡연 폐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묻고 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방지하겠다는 목적으로 담배회사 ㈜KT&G, ㈜한국필립모리스, ㈜BAT코리아를 상대로 약 533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533억원은 흡연력이 20갑년(20년 이상을 하루 한 갑씩 흡연) 이상, 흡연 기간이 30년 이상이면서 폐암 및 후두암으로 진단받은 환자 3465명에 대해 공단이 지급한 급여비 규모였다.
2020년 1심 법원은 이 사건의 질병이 흡연 외 다른 요인들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으며, 보험급여 비용을 지출했다 하더라도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을 뿐 손해배상을 구할 권리는 없다며 공단의 청구를 기각했다. 공단은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
이날 열린 변론에서 공단 측은 흡연과 폐암·후두암 발병 간 인과관계는 역학연구 결과를 토대로 인정돼야 하며, 의무기록 등 그간 제출한 자료를 바탕으로 소송대상자 3465명의 개별 인과관계도 입증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과거력(폐 질환 등), 가족력, 음주 및 직업요인 등을 검토해 위험요인이 없는 대상자들은 더욱더 인과관계가 뚜렷하다고 강조했다.
호흡기내과 교수 출신인 정 이사장은 “담배가 폐암 등 호흡기 질환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것은 과학적·의학적으로 명확히 입증되어 있고, 설령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고 해도 담배는 충분한 기여 인자로 질병의 발생과 악화를 촉진하기에 담배회사가 최소한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송대상자 중 흡연 외 암 발생의 위험요인이 전혀 없는 1467명을 분류·제출해 1심 판결에 대해 추가 증명했다”며 “의료 선진국 반열에 든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주장은) 늦었지만 인정돼야 한다”고 했다.
공단은 이날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최신 연구 논문과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의견서, 고도흡연자 질적 연구의 신뢰도 및 객관성 입증을 위한 연구자 진술서, 흡연 피해자 진술서를 증거로 제출했다고 밝혔다.
정 이사장은 “담배 소송은 흡연 관련 질환으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방지하고 동시에 흡연 폐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묻고 국민건강을 증진하기 위해 소송을 제기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하는 소송이 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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