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을 그림으로 보는가’에 대한 질문
‘무엇에 진정한 가치를 두는가’에 따라 상대적 해석
권소진 개인전, 2월 6∼28일 아트사이드 템포러리
눈이 녹아가는 듯 보이는 풍경에 주인공의 실루엣만 남아있다. 사라져 버린 주인공은 그를 지칭하기도 하고, 오려낸 조각을 훔쳐간 또다른 이를 암시하기도 한다. 작가 권소진의 ‘그림자 도둑’이다. 작품은 그려진 것과 복제된 것(프린트), 그리고 이 모든 레이어를 뚫어내는 하얀 구멍으로 이루어져 있다.
관람객은 상상하는 것과 재현된 그림, 실제 사물과 나의 기억 가운데 어떤 것에 진정한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상대적인 작품해석을 하게 되며, 작가가 던진 질문에 응해보는 시간도 누리게 된다.
작품마다 불쑥 벌새를 연상시키는 이미지들이 등장한다. 이는 관람객들의 자연스러운 사고 흐름을 방해한다. 자세히 본 것을 기록한다는 의미의 ‘관찰’이라는 작품 제목이 무색하게 관찰의 대상은 그 흔적만 남아있거나 다른 곳에서 오려내 붙인듯한 잔상이 감돈다. 보이는 그대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재현의 범주를 맴도는 표현들이다.
작가는 주인공이 사라져버린 ‘부재’의 세계를 통해 존재의 진정성을 묻는다. 언제나 어릴적 기억에서 출발하는데, 어린시절 권소진은 화단에서 꽃의 꿀을 빨고 있는 벌새를 보자마자 집으로 뛰어가 벌새를 봤다며 소리쳤다. 20여년이 넘게 그에게 특별했던 이 기억과 믿음은 최근 한국에 벌새가 없다는 사실과 ‘벌새인 척하는 나방’이라는 영상을 보며 흔들리고 말았다.
상상속 벌새를 실제로 보았다는 것이 중요하므로 진실이라 믿었던 어린시절처럼, 진실과 거짓을 가르는 것은 개인의 가치에 따라 상대적인 것은 아닐까. 진정한 것과 거짓된 것을 가르는 기준에 대해 질문하고자, 작가의 붓은 가위가 되어 정교하게 쌓아 올려 재현된 현실을 오려낸다. 지속적으로 재현할 대상을 프린트하고, 오려내고, 붙여보면서 현실을 거듭 재현하고 비워낸다.
이렇게 만들어진 ‘부재(不在)’의 세계는 ‘재(在)’를 더욱 또렷하게 상기시키는 아이러니한 세계를 형성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그간 캔버스 안에 머물러 있었던 세계를 이 공간에 침투시켜 확장했다는 점이 주목할만하다.
마룻바닥처럼 보이는 캔버스는 나무무늬 벽지처럼 찢겨나가고, 그 안에서는 또다른 차원 혹은 벽지처럼 보이는 표현을 통해 실제 현실과 작품, 기억과 상상의 층위를 보다 자유롭게 넘나든다. 또한 바닥무늬와 연계된 작은 창문처럼 보이는 신작은 눈이 녹으면 곧 사라질 찰나의 글과 그림을 묘사하며 전시의 출발점이 되는 작가의 불확실한 어린시절 기억으로 데려간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그림으로 보는가”라는 작가의 물음과 다시 만난다.
작가는 말한다. “진정한 것과 거짓말을 알아챌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때로는 거짓말을 앞세우는 것, 혹은 진정한 것이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막연한 믿음 이전에 그것이 사라져 버렸을 때 비로소 마주하는, 진정한 것들을 들여다 보자.”
권소진의 개인전이 ‘벌새를 보았다’는 문패를 내걸고, 2월 6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종로구 통의동 아트사이드 템포러리에서 관람객을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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