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23일 ‘신년기자회견’을 하며 사실상 조기대선 모드로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이념과 진영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 탈이념·탈진영의 현실적 실용주의가 위기 극복과 성장 발전의 동력”이라며 성장론을 기치로 내세웠다. 이 대표를 필두로 민주당은 조기대선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고 있었지만, 다가오는 대선 열차에 준비 없이 올라탈 수는 없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1장뿐인 카드
현재 여야를 통틀어 가장 유력한 대권 주자는 이 대표다. 지난 24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장래 정치지도자 선호도 조사에서 이 대표는 유일하게 30%대를 돌파했다(지난 21~23일 성인 남녀 1000명 대상,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2위는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11%)으로 큰 차이를 보였다.
그러나 최근 양자대결 조사에서는 이 대표와 여권 주자들이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난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국갤럽이 중앙일보 의뢰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 대표와 오세훈 서울시장이 맞붙을 경우 각각 46%와 43%로, 이 대표와 홍준표 대구시장의 대결에서는 45%와 42%로 모두 오차범위(±3.1%포인트) 내였다(지난 23~24일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1031명,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실제로 양 진영이 최대한 결집하였을 경우 승리를 장담하지 못한다는 방증이다.
카드가 1장뿐이니 여권에서는 계속해오던 대로 이 대표만을 겨냥한 전략을 세우면 될 가능성이 높다. 한 민주당 의원은 “우리는 카드를 다 보여주고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라며 현 상황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다. 지난 22대 총선 당시 이른바 ‘공천혁명’으로 당은 완전한 이 대표 체제로 재편됐으나 다양한 목소리가 줄어들었다는 평을 듣는 것도 사실이다.
야권 잠룡들이 몸을 풀고 있지만 경선 흥행도 현재로썬 기대가 낮다. 지난해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도 ‘어대명(어차피 대표는 이재명)’을 넘어 ‘구대명(90%의 득표율로 대표는 이재명)’이라는 말이 경선 초반부터 나올 정도였다. 당 내 경선은 이 대표로서도 정책을 홍보하고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일극체제’가 아닌 여러 의견이 혼재하는 민주정당이라는 모습도 보여줄 수 있다. 다양한 카드의 발굴도 해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인 셈이다.
◆좁아지는 운신 폭
‘사법리스크’외에 이 대표를 공격하는 가장 빈번한 단어는 ‘대통령 행세’다. 주로 윤석열 대통령 탄핵과 조기대선을 연관 짓는 말이다. 이를 경계하듯 이 대표도 당내에 겸손과 말조심을 강조했다. 지난 20일 6대 시중 은행장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이 대표는 “뭘 강요해서 무엇을 얻어 보거나 아니면 뭔가를 갖다가 강제하기 위한 건 전혀 아니다”라며 자세를 낮췄다.
하지만 이런 측면들을 고려하니 이 대표의 운신 폭이 좁아진다는 말도 나온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이 대표가 “최근 당 행사에 참여하는 빈도가 줄어들었다”고 했다. ‘비호감도’등 자신에 대한 외부 평가 때문에 활발한 활동을 자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판과 대선을 겨냥한 행보의 균형을 맞추는 작업이 필요해 보이는 대목이다.
이 대표 외의 잠재적 후보들은 활동폭을 아직 넓히지 않고 있다. 정권교체를 위해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강성 지지층인 ‘개딸(개혁의딸)’그룹의 공격에 직면할 공산이 커서다.
◆변신과 정통성 사이에서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반드시 중도층을 잡아야 한다는 명제는 대부분 동의한다. 이를 인식하듯 이 대표도 본인의 대표적인 정책인 ‘기본 시리즈’보다는 ‘탈이념, 성장, 실용주의’를 강조했다. 의원들도 현 경제상황을 볼 때 적절한 진단이었다는 평이 대다수다. 그렇지만 전통적인 민주진보진영과 민주당 지지층에 대한 불만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클릭’이 지속하면 국민의힘과의 차별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인 것이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유예 결정이었다. ‘정책 디베이트’와 당내 숙고 과정을 거쳤다고는 하나 여러 의원의 반발이 있었다.
한 재선 의원은 이 대표의 신년기자회견에 대해 “사회적 약자, 경제적 약자들의 얘기 등 우리의 장점을 강조하고, 경제성장도 동의한다며 상대의 장점을 무력화시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평했다.
정책 노선 변경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본인이 강조해온 정책을 왜 지금 변경하는지에 대한 설득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한 수도권 의원은 “말 바꾸기로 느껴지지 않고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잘 설명을 해 줘야 한다”며 “우리 지지층 특히 학자들은 분배라든가 불평등 문제에 관심이 많다. 왜 지금 성장이냐고 할 때는 거기에 대해 충분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대표와 민주당이 다양한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만큼 계산적인 선거 전략이 아니라 현재 필요한 전환임을 설득하는 작업도 필수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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