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치가 ‘12·3 비상계엄’과 그에 따른 윤석열 대통령 탄핵사태의 영향권 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45년만이자 민주화 이후 처음 이뤄진 대통령의 계엄선언. 현직 대통령에 대한 세번째 탄핵소추안 의결. 헌정사상 처음 이뤄진 현직 대통령에 대한 체포와 구속, 그리고 기소. 추후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반드시 기록될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나고 있지만, 사건의 파장을 조율해야 하는 ‘정치’는 사라지고 여야 간 대립만이 남았다. 그 와중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전세계는 ‘트럼프 2기’의 광풍과 마주하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지만 정치권은 ‘계엄’과 ‘탄핵’ 사이에서 갇혀버린 형국이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설 연휴 셋째 날인 27일 윤 대통령 구속기소와 관련해 공방을 벌였다. 앞서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는 윤석열 대통령을 26일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서울 영등포병원을 찾은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검찰 입장에서는 현재까지 수사 상황을 만족하지 못하고 (구속) 연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영장 기한) 연장을 신청한 건데, 법원이 연장을 불허했다면 불구속 상태로라도 충분히 수사해서 완벽한 판단을 갖고 기소 여부를 가렸어야 했다”며 “(검찰은) 그런 절차 없이 서둘러서 공수처에서 받은 대로 기소를 해버렸다”고 비판했다. 신동욱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윤 대통령 체포와 수사, 구속 기소 등과 관련하여 사상 초유의 ‘형사사법체계 대혼란’이 계속 되고 있습니다. ‘총체적 난국’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작금의 대혼란은 모두 ‘문재인·민주당표 엉터리 검수완박’ 때문”이라며 “앞으로의 재판 과정에서도, 공수처의 수사권 논란부터 불법 체포, 불법 수사, 불법 구금 문제로 인해 위법수집 증거 논란 등을 둘러싼 법적 논란과 국론 분열은 불을 보듯 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민주당은 윤 대통령뿐 아니라 공범과 비호세력도 단죄해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국민의힘을 향해 “내란 우두머리 대통령을 배출해놓고 일말의 반성조차 없는 뻔뻔함, 정당한 사법 절차마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오만함이 점입가경”이라면서 “더욱 가관인 것은 이들의 이중적 태도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윤석열 수호에 앞장서는 국민의힘이 실제로는 조기 대선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그 조기 대선 준비라는 것도 고작 이재명 때리기가 전부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고 비판했다. 조 수석대변인은 그러면서 “집권 기간 내내 이재명 때리기로 국력을 소진하고, 결국 내란으로 나라를 절단 내놓고 또 정치공세인가 정말 양심도 없다”며 “이들의 망상과 현실 부정을 깨뜨리기 위해서라도 특검이 필요하다. 최상목 권한대행이 하루 빨리 내란 특검법을 공표하기를, 다시 한번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여야의 날선 공방은 사실상 감정적 싸움으로도 비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낳는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16일 ‘12·3 비상계엄’ 사태를 조사할 특별검사 법안 처리여부를 놓고 논의했는데, 우원식 국회의장은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와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를 한 번에 부르지 않고 따로 따로 불러 협상테이블 시간 주선을 해야했다. 우 의장은 17일 여야의 특검법안 협상을 위해 권·박 원내대표와 함께 한 자리에서 “여야 관계가 좋지 않아 오늘 만나는 자리도 따로따로 만나서 합의했다”고 말했다. 우 의장은 협상 때 모두발언을 자처하며 “양 교섭단체가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양보안을 만들었다”며 “합의가 잘 안되면 오늘 밤 늦게까지라도 문을 걸어잠그고 합의하는 심정으로 상호간 양보 정신을 더 좁혀 합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는데, 결국 여야 협상은 결렬됐고 민주당 단독으로 특검법안은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특검안을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거부하도록 요구하고 있고, 민주당은 특검법 공표를 압박하고 있다.
양당의 갈등은 하루 이틀의 일은 아니고, 최근 들어 심한 추세인것도 맞다. 문제는 한국을 둘러싸고 있는 외부환경이 녹록치 않다는 점에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취임식에서 “미국의 황금시대가 시작됐다“며 미국 경제를 회복하겠다고 약속하고 대규모 행정명령을 발동, 에너지, 관세, 불법 이민자 추방 등에서 ‘미국 우선주의’를 도드라지게 펼쳤다. 불법 이민자 추방정책을 강경하게 추진중인 트럼프 대통령은 체포한 콜롬비아 국적 불법 이민자를 군용기 편에 태워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 착륙시키는 것을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이 거부하자 미국으로 수입되는 콜롬비아산 제품에 대해 곧바로 25%의 관세를 부과하고, 1주일 뒤에는 50%로 관세율을 높이겠다고 선언했다. 콜롬비아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불법 이민자 추방 조건을 수용했다고 백악관은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캐나다, 멕시코, 중국 등에 고관세를 물리겠다고 압박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압박 정책이 한국을 안 향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미국은 한국에서 무역적자를 보고 있고, 트럼프 정부는 무역수지 균형을 주요 정책목표로 삼은 상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산 미국 수출품에 부과되는 관세가 인상됨에 따라 우리나라 대미 수출이 축소될 것”이라며 “멕시코와 캐나다 등 한국 기업이 다수 진출한 지역에 고관세가 부과되면 현지에 진출한 우리 기업의 중간재 수요 감소에 따른 한국산 중간재 수출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산업연구원은 지난달 26일 ‘트럼프 보편관세의 효과 분석’ 보고서를 통해 미국이 보편 관세를 부과할 경우 대미 수출이 최소 9.3%에서 최대 13.1% 줄어들 것으로 추정했다.
한국 내 기업인, 관료, 정치인 모두가 힘을 합쳐 ‘트럼프 시대’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인데, 정치권 내부의 갈등은 진정국면보다 더 확장 추세이며, 심지어 감정적인 골까지 넘칠 우려마저 있다. 20일 진행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서 국내 인사 가운데 의사당 중앙홀 취임식에 참석한 인사는 한국 정부 대표로 간 조현동 주미대사가 유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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