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전자 소재 개발에 성큼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이경진·김갑진 교수, 서강대 정명화 교수 공동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상온에서 양자역학적 스핀 펌핑 현상을 발견했다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30일 밝혔다. 에너지 소모량이 적은 전자 소자 개발에 한 걸음 다가선 발견으로 평가된다.
이 연구 성과는 이날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게재됐다.
전자는 전기적 성질인 전하와 자기적 성질인 스핀(전자의 자발적인 양자 각운동량)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전류는 전자가 이동하는 현상으로, 전하의 이동으로 발생하는 전하 전류와 스핀의 움직임으로 생기는 스핀 전류로 나뉜다. 일상에서 쓰는 전자기기 대부분은 전하 전류로 작동한다. 문제는 전자가 이동하면서 원자와 충돌해 열이 발생하기 때문에 에너지 소모량이 증가하고 효율이 저하된다는 점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전하 전류가 아닌 스핀 전류를 이용해 전자소자를 만드는 연구를 하고 있다. 이를 스핀트로닉스라고 한다. 스핀트로닉스는 스핀 전류를 활용함으로써 소자에서 열 발생을 줄일 수 있어 차세대 전자소자로 주목받고 있다.
스핀트로닉스 기술 구현의 핵심은 스핀 전류를 생성하는 것이다. 스핀 전류 생성의 여러 방법 중 하나가 스핀 펌핑이다. 스핀 펌핑은 자성체와 비자성체를 접합했을 때, 스핀이 세차운동(회전축이 기울어지면서 빙빙 도는 운동)에 의해 자성체에서 비자성체로 이동하는 현상을 말한다. 다만 고전역학적 스핀 펌핑으로 생성되는 전류는 크기가 작아 전자 소자에 활용하기에 제한이 있었다.
고전역학적 스핀 펌핑은 자석 내부 자화(자기장 안의 물체의 자기)의 세차운동에 의해 발생한다. 자화의 크기가 고정된 상태에서 방향만 변하는 방식으로 스핀 전류를 생성한다. 반면 양자역학적인 스핀 펌핑은 자화 방향이 고정된 상태에서 자화의 크기가 변할 때 발생한다. 이 경우 생성되는 스핀 전류가 고전역학적인 세차운동보다 매우 클 것으로 공동 연구진은 예측했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정명화 교수팀은 고품질의 철(Fe)-로듐(Rh) 자성 박막을 제작하는 데 성공했다. 김갑진 교수 연구팀은 철-로듐 자성 박막(FeRh)의 상전이 순간 스핀 전류를 실시간으로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상전이에 의한 스핀 펌핑을 관측했다. 상전이 순간에 발생하는 스핀을 측정하려면 나노초 수준의 짧은 시간에 매우 작은 신호를 포착해야 한다. 이경진 교수 연구팀은 이를 양자역학적 이론으로 해석하고 추가 실험으로 증명했다.
FeRh는 온도를 올리면 자기 상변화를 일으킨다. 상온에서는 반강자성체였다가 약 100도에서 강자성체로 변한다. 이 상전이 과정에서 양자역학적인 교환상호작용의 급격한 변화로 로듐의 자화 크기가 크게 변하며, 이로 인해 양자역학적인 스핀 펌핑이 발생한다.
대부분의 양자역학적 현상은 극저온에서만 관측되는 것과 달리, 이번 연구는 상온에서 양자역학적 스핀 펌핑 현상을 관측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기존 고전역학적 방식보다 10배 이상의 스핀 전류를 생성하는 방법을 제시해 차세대 전자 소자 개발에 기여할 전망이다.
공동연구팀은 “기존 스핀트로닉스 연구는 고전적인 스핀 운동을 이용해 온 반면, 이번 연구는 스핀의 양자적인 특성을 활용하여, 응용 측면에서도 더 효과적이라는 점을 증명한 것에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또 “양자역학적인 스핀 펌핑은 자성체 내에서 크기가 변화하는 스핀과 이에 의해 펌핑되는 스핀이 서로 얽혀있음을 나타낸다”며 “이는 스핀트로닉스 기술이 단순한 전자소자 응용을 넘어 양자기술의 핵심 기반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발견”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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