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물리학자들 초청받지 못해
물리학 연구 알려야 하는 현실
100년후엔 초청받을 수 있을까
헬골란트라는 독일 섬이 북해에 있다. 엘베강 하구에서 가까운 해안에서 48km 떨어진 작은 섬이다. 이 섬에 6월10일 오전 9시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5명을 포함한 일단의 물리학자들이 페리를 타고 간다. 방문 목적은 양자역학 탄생 100년 기념이다. ‘헬골란트 2025’라는 제목의 워크숍에 참석한다.
2025년은 양자역학 탄생 100년이고, 유엔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올해를 ‘세계 양자과학기술의 해’로 정했다. 유엔은 “양자역학 100주년을 양자과학과 그 응용이 삶의 모든 측면에 갖는 중요성과 충격을 일반인이 더 잘 아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고 말한다. 관련해서 기념행사 여러 개가 계획되어 있는데 이 중 헬골란트섬 워크숍이 백미다. 14일까지 6일간 열리는 워크숍에 참여하는 연사와 패널 토론자는 57명이다.
참가자 중 노벨상 수상자 5명은 양자역학의 기초와 관련한 연구를 한 바 있다. 2022년 수상자 세 사람은 ‘양자 얽힘’ 현상을 실험으로 증명했다. 이 중 안톤 차일링거는 ‘아인슈타인의 베일’이라는 교양과학책이 한국에도 나와 있어 내게 낯설지 않다. 또 2012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들은 양자세계를 관측할 수 있는 실험 방법을 개발한 바 있다. 양자세계는 관찰하려고 하면 ‘양자 중첩’과 같은 양자적인 특징이 사라져 버린다. 두 사람은 양자 특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입자나 광자라는 개별 양자 시스템을 제어하고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이 중 데이비드 와인랜드는 ‘양자 중첩’ 현상을 실험으로 보인 바 있다. 양자 얽힘과 양자 중첩은 요즘 핫한 양자컴퓨터 작동의 기본원리다.
헬골란트 워크숍의 다른 참석자 중에도 내게 익숙한 이름이 많다. 이태리인 카를로 로벨리는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등의 대중 과학서를 많이 썼다. 스위스인 니콜라 지생은 ‘양자 우연성’이라는 책 저자다. 아르헨티나인 후안 말다세나는 끈이론가로 유명하다.
왜 북해의 외딴섬 헬골란트가 양자역학 탄생지가 되었을까? 1925년 6월6일 23살의 독일 청년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헬골란트를 찾아 10일간 머물렀다. 그리고 산통을 겪고 있던 양자역학을 수학으로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 하이젠베르크의 양자역학의 형식화 작업 결과를 ‘행렬 역학’이라고 한다. 그는 원자에서 왜 특정 색깔의 빛이 나오는지와 세기는 왜 저런지를 수식으로 설명해 냈다. 당시 하이젠베르크는 극심한 꽃가루 알레르기를 앓고 있었다. 헬골란트로 간 건, 이 섬에는 꽃이 거의 없어 꽃가루가 날리지 않기 때문이다. 하이젠베르크는 1971년에 내놓은 학문적인 자서전 ‘부분과 전체’에서 헬골란트에서의 영감의 순간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계산의 최종 결과가 나온 것은 새벽 3시가 가까워서였고, 모든 항에서 에너지 법칙이 타당한 것으로 증명되었다. … 순간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원자 현상의 표면 밑에 깊숙이 간직되어 있는 내적인 아름다움의 근거를 바라보는 그러한 느낌이었다. 나는 이제 자연이 내 눈앞에 펼쳐 보여준 수학 구조의 풍요함을 추적해야 한다는 데 생각이 이르자 현기증을 느낄 정도였다. 흥분의 도가니에 빠진 나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100년이 지나 양자역학 탄생지라는 과학의 성지로 순례를 갈 물리학자들은 그곳에서 무엇을 할까? ‘양자역학의 토대’, ‘양자와 시공간’, ‘양자 정보’, ‘양자 측정’, ‘거시 양자 현상과 결 어긋남’이라는 제목의 세션을 갖는다. 발표자들이 어떤 큰 이야기를 주고받을지 개인적으로 흥미롭다. 워크숍 마지막 날에는 향후 100년을 전망한다.
헬골란트섬 워크숍에 초청받은 한국 물리학자는 없는 것 같다. 참석자 명단에 한국인이 안 보인다. 분투하고 있는 한국의 물리학자들이 떠오른다. 예컨대 중성미자 실험을 하기 위해 백방으로 돈을 구하러 다니던 입자물리학·천체물리학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과학기술부와 국회를 찾아가 중성미자 실험을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웃 일본과 중국 사례를 들어가며 한국도 중성미자 실험을 해야 한다고 호소했으나, 빈손으로 돌아서야 했다. 이런 식이라면 100년 후 헬골란트섬에서 열릴 ‘헬골란트 2125’ 워크숍에 초청받을 한국 물리학자는 있을까 싶다. 생각만 해도 속이 쓰리다. 어쩌자고들 우리는 이러고 있는 것일까?
최준석 과학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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