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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영 변호사 “김신혜씨 사건, 누구나 겪을 수 있어…‘심리 결함 이용’ 수사 기법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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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2-11 07:58:08 수정 : 2025-02-11 10:3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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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심 1심 무죄’ 이끌어 낸
朴 변호사 인터뷰 일문일답

무기수 김신혜씨 재심 사건 변호인 박준영(51·사법연수원 35기) 변호사는 김씨 사건을 두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사건”이라고 말한다. 형사 절차에서 무죄 추정 원칙, 적법절차, 인권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박 변호사는 지난 4일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인간의 심리적 결함을 이용하는 수사 기법이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고, 어떤 차별, 사람을 은근히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고 본다”면서 “자신을 표현하는 언어가 부족한 약자들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가 지난 2월4일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 사옥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박 변호사는 수원 10대 소녀 상해치사 사건을 시작으로,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부산 낙동강변 살인, 화성 연쇄살인 8차 사건에 이어 지난달 6일 김씨 사건 재심까지 줄줄이 무죄를 이끌어 내 재심 전문 변호사로 통한다. 그에겐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등 재심 사건이 10건 정도 남아 있다.

 

박 변호사는 이처럼 사법 피해자들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내는 역할을 하면서도, ‘등대장학회’를 설립해 위기 청소년들 지원에 나섰다. 그와 뜻을 함께할 후원자, 더 많은 등대지기들을 기다리고 있다. 아울러 “앞으로 우리 사법 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하고 싶다”고 했다. 광주고법에서 진행될 김씨 재심 사건 2심에 대한 관심도 당부했다. 다음은 박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전문.

 

—김신혜씨 사건을 맡은 계기.

 

“이 사건을 처음 접한 때는 2014년 여름입니다. 한 방송사 시사 프로그램 PD로부터 만나 달라는 부탁을 받았거든요. 접견할 때만 해도, 제가 기록을 안 본 상태로 갔습니다. 억울함에 대한 어떤 공감보다는 복역 중인 무기수가 무죄를 주장한다는 사실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컸거든요.

 

그런데 당시 접견하며 눈앞에서 절규하는 모습에 굉장히 충격받았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 맡게 된 이유는 기록을 보고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을 했다기보다는 감성, 감정적 부분이 좀 더 컸던 것 같고요. 이런 감정적인 부분이, 기록을 보면 선입견을 갖게 되는데 기록의 어떤 이면의 진실을 보게 만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김씨 재심이 받아들여지고 9년여 만에 선고된 이유는.

 

“2018년 재심이 확정됐습니다. 재심이 개시된 때는 2015년이고요. 검찰 불복으로 확정이 미뤄졌죠.

 

재판은 2019년 곧바로 시작됐는데, 여러 이유로 진행이 많이 더뎠습니다. 김씨가 변호인을 해임하거나 국선변호인을 취소하는 경우도 여러 번 있었고, 판사 기피 신청도 있었고요. 재판에 상당히 많이 출석을 안 했습니다. 이런 사실이 김씨를 유별난 사람으로 보게 만드는 이유인 건 부인 못 합니다.

 

하지만 변론 준비가 많이 부족했던 변호인을 상대로, 그리고 과거 재판, 그 유죄판결의 영향력에서 못 벗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재판부를 상대로 한, 갇혀 있는 사람의 처절한 어떤 저항이란 생각도 사실 들거든요. 그래서 여러 가지 복합적 원인으로 재판이 많이 미뤄졌고, 확정 후 7년 만에 선고된 겁니다.”

 


 

—재심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뒤 “24년간 무죄를 주장해 온 당사자의 진실의 힘이 무죄의 강력한 증거”라고 밝혔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물론 재판 과정에서 물적 증거나 인적 증거가 중요하죠. 그런데 재심에선 억울하다는 주장을 얼마나 오랫동안 꿋꿋하게 해 왔는지도 상당히 중요한 것 같아요.

 

무슨 얘기냐 하면, 교도소 수감 중 교도관 지시에 순응하며 지시를 잘 따르면서 복역하면 가석방이나 이런 감형의 어떤 기대도 갖게 될 수 있고요. 또 교도소 내 처우에도 유리한 부분 꽤 있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징역살이란 게 사람을 가두는 게 그치는 게 아니라 정역이라고, 작업이나 노역을 하게 만들거든요. 그걸 다 거부했습니다. 정역을 거부했다는 사실은, 수감 중 받을 수 있는 혜택을 사실상 거의 받지 못한다는 걸로 이어지거든요.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모습, 얼마든지 차선책을 생각할 수 있는데 무죄만이 최선이라고 꿋꿋하게 고집하며 수감 기간을 견디고, 당시 재심 전 재판 과정에서도 사형이 구형됐는데도 무죄만 주장했거든요. 그리고 또 재심 과정에서도 무죄 아니면, 차라리 무기징역 선고해라 그런 주장을 강하게 했습니다.

 

이런 피고인의 일관되고 꿋꿋한, 오랜 기간의 어떤 무죄 주장이 재판부 입장에선 증거를 바라봄에 있어서 선입견이나 편견을 걷어 내게끔 만드는 것 같아요. 그래서 공정한 재판이 가능하지 않았나, 이런 피고인의 입장이. 그래서 25년 가까이 일관되게 억울함을 주장했던 당사자의 힘이 재심에서 가장 강력한 무죄 증거였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판결 이후에 김씨에 대한 논란이 좀 있습니다.

 

“저도 기사, 유튜브 영상 댓글을 보면은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못하는 분들이 꽤 많은 걸로 보여요. 그분들이 주목하는 증거들 중엔 범행 계획으로 알려진 시나리오, 메모가 있고, 다수의 보험, 그리고 자백을 들었다는 친척들 진술, 이런 증거들을 주목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의구심 말씀하시는 분들이 주목하는 증거는 재심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도 의미 있게 보고 살폈거든요. 그리고 무죄판결에도 검찰이 제출했던 증거를 배척한 이유가 상당히 자세히 설시돼 있습니다. 이런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자리에서 그 증거들에 대한 세세한 해명을 하기가 쉽진 않습니다.

 

2심 재판이 곧 진행되거든요. 재판 과정에서 또 한 번 쟁점이 됩니다. 재판 과정에서 나오는 여러 얘기들에 관심을 가져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확증 편향’이라고, 저도 갖고 있는데요. 사람은 그 내심에서 어떤 믿음, 한번 가졌던 믿음과 배치되는 사실이나 증거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 믿음에 부합하는 증거에 주목하고 그 사실에 집중하는 게 사람이 갖고 있는 인간 심리의 어떤 결함이랄까요. 하나의 모습이거든요.

 

지금 의구심을 갖고 있는 분들도, 김씨 측 주장에 대해서도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살펴 주시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물론 저도 그분들이 주장하는 의혹들도 꼼꼼히 살펴, (무죄) 논리를 더 탄탄히 하고 관련 증거를 수집하는 데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가 지난 2월4일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 사옥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김씨가 유죄에 상응하는 게 나오지 않았다는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유죄를 뒷받침하는 증거도 있고, 무죄를 뒷받침하는 증거도 있고요.

 

유죄란 건 검사가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을 요구하는 거거든요. 이 사건은 유죄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부족해 무죄를 받은 사건입니다. 이전에 제가 맡았던 재심 사건 중에 약촌오거리나 삼례 나라슈퍼 사건 같은 경우는 진범이 따로 있는 사건이거든요. 그런 사건들은 유죄를 얘기하는 분들이 드물었습니다.

 

이 사건은 온전히 무죄를 얘기하기 쉽지 않은 사건인 건 맞아요. 하지만 지금 단계에서 25년 전 발생했던 사건의 실체를 밝히기 위한 증거를 수집하긴 어렵거든요.

 

그런데 25년 전 수사기관에서 김씨를 향한 증거만 수집했습니다, 사실상. 많이 아쉽고 안타까운 부분이 뭐냐면은 피해자의 마지막 행적을 확인할 수 있는 통화 내역 같은 거, 굉장히 중요한 자료거든요. 그런 자료들이 수집됐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게 의도적으로 배제됐습니다. 그런 부분도 있고.

 

김씨 아버지가 발견된 모습조차도 온전히 보전이 안 된 사건이에요. 사진상으론 마지막 발견된 모습이 하늘 보고 누워 있는 모습이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오른쪽 뺨이 땅바닥에 닿은 상태였어요. 그걸 뒤집어서 촬영이 됐고.

 

그리고 그 현장을 처음 발견한, 신고한 사람들, 이런 사람들 조사도 안 돼 있고. 마지막에 술을 함께 마신 사람들에 대한 조사 내용도 그냥 수사 보고 1장으로 정리돼 있거든요. 그래서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증거들이 수집되고, 그 증거들을 놓고 25년 지난 지금 시점에 실체를 판단한다면 그나마 공정할 것 같아요.

 

그런데 김씨를 향한 증거만 갖고, 25년 지난 지금 새로운 증거를 수집하기에 한계가 있는 이 사건에서 여전히 의심스럽다고 얘기하는 건 김씨 입장에선 굉장히 가혹할 것 같습니다. 이런 일은 사실 누구나 겪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무죄 추정 원칙, 적법절차, 인권이란 게 형사 절차에서 굉장히 중요한 가치입니다.”

 

—검찰 항소도 이런 식으로 대응할 건가요.

 

“사실 검찰 항소가 예상된 사건이었습니다. 검찰이 1심에서 무기징역을 다시 구형했거든요. 구형 이유도 굉장히 상세히 정리해 재판부에 제출했어요. 무죄판결 이후에 검찰 입장이 완전히 달라지기 어렵다고 봤죠.

 

항소심에서도 치열하게 다툴 겁니다. 검찰 주장과 저희 주장은 목적과 방향이 다를 수밖에 없죠. 많이 부딪칠 거예요. 피곤하겠죠. 하지만 재판이란 게, 그런 검찰 주장을 반박하며 무죄 논리는 또 탄탄해지는 부분이 사실 있거든요. 새로운 뭔가를 찾으려 노력도 할 거예요. 2심 판결문엔 1심 판결에서 좀 아쉬웠던 무죄의 이유들이 더 담길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김씨 건강 상태는.

 

“수감 기간이 25년 가까이 되거든요. 초반 3∼4년 제외한 대부분 기간 동안 독거실에 수용돼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죄를 짓지 않았는데 무슨 노역이냐면서 작업이나 노역을 거부했죠. 이건 소통이 거의 없이, 관계가 단절된 상태에서 오랫동안 수감 생활을 했다는 의미거든요. 혼자만의 생각은 더 강해지고, 그러다 보니 망상이 심해졌습니다.

 

2018년이 굉장히 우려될 정도로 심해진 때라 생각해요. 그때로부터 벌써 7년이 지났잖아요. 재판 도중엔 한때 재판이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병원에 보내 상황을 확인하려 했는데 (김씨가) 모든 진단을 거부하는 바람에 교도소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출소했고요. 출소 후에 동생이 병원에 데리고 가려 했는데 본인이 완강히 거부했거든요. 최근 완도 집을 나와 서울에 올라온 일이 계기가 돼서 응급입원을 거쳐 행정입원 상태로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습니다.”

 

—김씨가 24년간 무죄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버팀목은.

 

“저한테 자주 했던 말이기도 하고, 편지에도 자주 언급했던 내용이 뭐였냐면,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 그 확신이 있었기에 오랜 기간 무죄 주장을 일관되게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와의 어떤 의리도 자주 언급했습니다. 이 사건은 범행 동기로 아버지 성추행이 언급된 사건이거든요. 당시 아버지의 딸들에 대한 성추행 때문에 (김씨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인정된 사건인데, 아버지 성추행은 가까운 친척들, 고모부 등이 만들어 낸, 딸이기에 아버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하면 선처받을 수 있다는 그런 논리로 만들어 낸 범행 동기였거든요.

 

이렇게 조작된 동기였음에도 딸이 유죄를 받고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된 후엔 죽어서까지 딸들을 성추행한 정말 못된 아버지로 낙인찍혀 버렸잖아요. 그래서 김씨는 아버지 명예를 회복시키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본인이 무죄를 받는 게 아버지 명예를 회복시키는 것이다.

 

의리를 말씀드렸는데 어머니 두 분이 일찍 집을 나가셨거든요. 장애가 있던 아버지는 자신과 동생들을 잘 키워 줬다, 그 아버지에 대한 의리는 지켜야 되는 것 아니냐, 그런 얘기를 자주 했습니다.”

 

—김씨 일기장이 있는지.

 

“사실 상당히 많은 자필 메모, 글들이 있거든요. 제게 보낸 편지 양도 한 박스가 될 정도로 많죠. 김씨가 보관 중이던 본인의 글, 메모가 상당히 중요한데요. 출소할 때 망상에 빠져 노트 몇 권만 갖고 나왔고, (나머지) 기록, 사진 등은 방송을 통해 언급한 내용을 봤는데 중국으로 보냈다고 하더라고요. 교도소 측에 확인해 보려 합니다. 그게 보내져 반송됐는지, 아니면 폐기됐는지.”

 

—특별히 재심 사건만 하는 이유.

 

“재심 사건을 주로 할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정말 운명적으로 첫 재심 사건을 국선 변호하며 맡게 됐던 거죠. 수원 10대 소녀 상해치사 사건인데요. 그 사건 변호하는 과정에서 이미 형 확정된 공범의 재심이 필요해 재심 제도를 공부하고 재심을 청구하게 됐습니다.

 

그 이후 성과가 나고 비슷한 사건들 의뢰가 계속 왔던 거죠. 벌써 15년 가까이 됐는데요. 개인적 욕심도 많았죠. 이런 재심 사건, 형 확정된 사건을 뒤집으면 사회적 가치가 올라갈 것이다, 그게 돈 버는 데도 도움 되고, 또 능력 있는 변호사로 알려지는 데 많이 일조할 거고. 이런 부분들에 대한 욕심도 컸고요.

 

계속 해 가는 이유는, 재심을 도와 달라는 사건들이 꽤 밀려 있습니다.

 

그리고 매력이 있습니다. 한 사건을 들여다보게 되거든요. 거기에 인간사가 들어 있습니다.

 

김신혜씨 사건을 예로 들어 설명하자면, 남동생이 사건에 관계돼 있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자백한 걸로 알려진 사건이거든요, 당시에. 이 허위 자백 동기와 관련해 많은 의구심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자백한다면 이해되는데, 누나가 동생을 위해, 살인 사건 범인으로 스스로 내몰린다는 거 이해가 안 된다.

 

그런데요. 김씨 삶을 들여다보지 않고는 쉽게 판단해선 안 되는 부분입니다. 판결문에도 언급돼 있거든요. 남동생을 보호하기 위해 허위 자백을 했을 가능성을 인정했거든요. 그리고 정말 누나로서 살뜰하게 동생들을 살피고, 아버지, 조부모 봉양했다는 것도 언급돼 있습니다. 저도 재심 재판 과정에서 그 부분 많이 부각도 했고요.

 

이 과정에서 누이로서 어미의 역할을 하려 했던 김씨 삶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우리가 점점 잃어 가는 가치이기도 하잖아요. 재심 무죄도 중요하지만 스물두 살 젊은 여성이 본인의 꿈을 위해 노력해 왔던 삶, 가족들을 챙기기 위해 애썼던 삶에 대한 얘기도 하고 싶었습니다.

 

비극적인 사건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하거든요. 비극미라 불립니다. 그 미라는 건 어떤 외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삶과 사회에 대한 성찰이나 각성의 의미거든요. 비극적 사건에선 그런 성찰과 각성을 하게끔 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재심 사건을 계속 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정치적 러브콜도 있었을 것 같은데.

 

“한때 정치에 대한 생각이나 욕심이 없었던 건 아니죠. 사람이 알려지면 주변에서도 그런 말 자주 하고. 자주 듣다 보면 또 그렇게 가는 게,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경로를 거치잖아요. 그리고 정치를 한다는 것이 뭔가, 유명세에 욕심 있었던 사람이라, 그게 더 확장되는 의미도 있잖아요. 또 아웃사이더이지 않습니까. 주류 법조인 길을 걸어온 사람은 아니다 보니 상대적 열패감을 넘어서는 의미로서 그 길도 생각 안 해본 건 아닌데요. 점점 내려놓으려 하고 좀 멀리하려 하죠.

 

왜냐면 지금 완전히 우리 사회가 갈라져 있잖아요. 제가 어느 편에 서면 지금까지 해 왔던 일도 의미가 많이 퇴색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사실.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동력도 잃어버릴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되도록 정치적 이슈에 발을 안 담그려 했는데 검찰(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일을 하며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이나 장자연씨 사건에서 했던 발언들로 오해도 많이 받았고 지금도 그 오해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그런 오해를 좀 풀고 싶어요. 물론 제가 좀 더 신중하게 발언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닙니다.

 

앞으로의 활동을 통해서는 정치 문제엔 약간 거리를 두면서 우리 사법 제도에 대한 얘기를 진지하게 하고 싶어요. 지금 밀린 사건이, 진행해야 할 사건이 10건가량 있는데, 그걸 내팽개치고 어디 간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거죠. 정치든 공직이든. 제안도 없었지만(웃음).”

 

—‘등대장학회’가 탄생한 연유.

 

“재심 사건에서 무죄를 받게 되면 피해자 분들이 받는 보상금이나 배상금이 있거든요. 그 돈에 욕심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닙니다. 저도 점점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다 보니, 얘들 키워야 하고.

 

2015년, 2016년경에 스토리 펀딩을 통해 많은 시민들에게 후원을 받았어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후원이 있었고, 사회적 도움을 너무 크게 받은 거죠. 그게 계속 빚으로 작용하는 건 맞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해서든 갚아 가야 한다는 생각도 있고.

 

그래서 재심 사건 피해자 분들이 모아 주신 돈을 재원으로 공익 단체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단체 만들까, 이렇게 억울한 사법 피해자를 돕는 단체를 만들까, 그런데 재심을 돕는 단체를 만들면 우리가 주목하는 사건보다는 뭔가 자신의 피해를 과장하거나 왜곡해 다가오는 분들, 이런 감당하기 힘든 민원 때문에 단체를 정상적으로 운영하긴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위기 청소년들,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을 돕자. 그게 왜 필요하다 봤냐면. 어떤 가정의 어려움이 그 부모의 사업 실패나 어떤 욕심에서 비롯된 어려움일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까지 그런 피해를 짊어지게 하는 건 아니라고 본 거죠. 그 아이들을 돕는 일이, 정말 힘들어지는 가정이 점점 많아지는 이 사회에서 필요하다 생각했고요.

 

그런 아이들을 잘 도우면 그 아이들은 성장해 본인과 같이 힘들게 성장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계속 선순환된다고 보는 거죠. 그래서 장학 재단을 만든 거고요.

 

장학 재단이 또, 재심도 사실, 뭔가 회복될 기회를 주는, 회복할 기회와 관련되는 얘기거든요. 위기 청소년을 돕는 일도 회복될 기회, 건강하게 변화를 얘기할 수 있는 어떤 기회를 주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약간 비슷한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회복될 기회라는 게 본인이 어릴 적 받지 못했던 것과 관련 있는지요.

 

“그건 아닙니다. 저는 제 의지와 노력으로, 이런 변화를 경험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많은 도움이 있었거든요. 가족과 친척들 도움도 있었지만 공동체 지원도 있었습니다. 이런 기회와 경험을 한 사람이라도 갖게끔 하는 게 맞다고 봤습니다. 저의 어떤 과거, 청소년 성장 과정에서 겪었던 일, 제 경험들이 이런 일에 더 관심을 가지게끔 만든 이유인 건 부정하기 어렵죠. 저도 도움받았기 때문에 이런 기회,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잘 아는 거죠.

 

저를 믿고 후원해 주신다는 분들도 꽤 있으시거든요. 이런 기회를 잘 활용해, 재단 돈을 잘 모으고 그 돈을 잘 연결하는 게 또 제가 할 수 있는 사회적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가 지난 2월4일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 사옥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재단 이름은.

 

“부산 낙동강변 살인 사건에서 억울하게 옥살이한 분들이 재단을 설립하는 데 가장 많은 출연금을 내셨습니다. 이분들이 지어 주신 이름이거든요. 부산 분들이다 보니, 지역적으로 등대가 친근하고 각별한 의미가 있다고 전 생각합니다.

 

등대의 의미가 어두운 바다의 길을 밝혀 주고 비춰 주는 의미가 있잖아요. 굉장히 잘 지은 것 같아요. 최근 신년 인사를 보낼 때, 후원자님이란 표현을 썼는데 이런 제안을 받았어요. 후원자님보다는 등대지기라 쓰는 것도 괜찮아 보인다. 좀 어울리잖아요.

 

이 인터뷰가, 많은 분들의 공감으로 이어져 등대지기 분들이 곳곳에서 많아지는 의미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습니다.”

 

—김신혜씨 사건은 2000년대 초반 사건인데, 이 사건에서 드러난 수사기관의 잘못된 행위, 문제들이 지금도 여전하다고 보는지요.

 

“영화 ‘재심’ 모티브가 된 약촌오거리 사건도 2000년 8월에 있었던 사건이고요. 김씨 사건은 오히려 그 전입니다.

 

약촌오거리 사건에서 여관으로 데려가 자백을 받아냈거든요.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폭행이나 가혹 행위, 잘못된 수사가 사라지지 않았다. 많았다고 얘기하긴 어렵지만 근절되지 않고 암암리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수사 방식, 문제 많은 수사가 지금 2025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고문이나 가혹 행위 같은, 참기 힘든 물리적 강요가 있는 수사는 거의 없다고 봅니다.

 

다만 심리적인 수사 기법, 기망이나 회유, 인간의 타고난 심리적 결함을 이용하는 수사 기법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보고 있거든요. 김씨 사건에선 동생이 자백했다, 누나랑 함께 했다 그렇게 기망하면서 자백을 받아 내려고도 했습니다. 이런 심리적 기법들은 여전히 어디에선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요.

 

사람에 대한 어떤 차별, 은근히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일들도 벌어지고 있다고 봅니다. 인권이 강조되다 보니 옛날처럼 겉으로 드러내는 형태는 아닐 수 있죠. 하지만 차별적인 시선과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 여러 형태로 수사 과정에서 발현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이런 생각해 봐요. 제가 지금 진행하고 있는 재심 사건 중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사건이 있거든요. 2009년 사건입니다. 2000년 발생했던 김신혜씨 사건과 9년 차이가 있죠.

 

순천 사건에선 어떤 문제점을 보냐면, 자신을 표현하는 언어가 부족하더라고요. 자신의 경험, 보고 느낀 바, 감정, 생각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기를 어려워해요. 이런 분들이 불이익을 받습니다. 그 언어를 채워 주는 노력을 신뢰 관계자나 변호인이 해 가야 하는데, 신뢰 관계자나 변호인의 적절한 조력이 없을 때는 수사기관의 시나리오가 그대로 주입되는 것 같아요. 수사기관 시나리오가 조서에는 조사받는 사람의 언어로 구성돼 담기기도 하고. 그런 왜곡이 순천 사건에선 굉장히 많았습니다. 언어의 부족, 한계로 인해 약자들이 얼마든지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의 개선을 위한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사법 불신이 심각한데, 검찰과 법원이 재심 사건에 좀 더 전향적으로 임하는 게 사법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일까요.

 

“재심 사건 통계는, 많은 분이 주목하는 재심 사건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얼마나 처리되고 있는지에 대한 경향성을 파악하기엔 분명히 한계가 있습니다.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한 형법 조항과 관련된 재심, 간통, 혼인 빙자 간음, 약물 규정에 대한 재심, 이런 재심도 상당히 많습니다. 이런 재심의 비중이 더 높아요.

 

그러다 보니 통계를 갖고 한 해 재심 청구가 몇 건이고, 몇 건이 기각되고 얼마나 시간이 걸리고 이걸 논한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없다고 봐요.

 

김신혜씨 사건 재심에 대해 검찰이 불복했잖아요. 김씨나 그 가족의 입장에선 고통의 시간이 길어지는 가혹함이 분명 있습니다. 변호인도 변호인으로서 문제의식이 없는 건 아니에요. 다만 한편으로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된 사건을, 진범에 대한 구체적 근거 없이, 1심 판결로 끝내라? 검찰 입장에선 가혹할 수 있습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얘기하는 사건이잖아요. 이런 사건을 검찰이 불복 없이 1심에서 마무리한다? 이건 또 다른 어떤 불신을 야기할 수 있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런 인터뷰 내용이 김씨나 가족 입장에선, 좀 더 우리 입장을 얘기하지 하는 아쉬움이 있을 수 있지만, 좀 더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보면 1심에서 마무리하기 어려운 상황적인 한계가 있는 사건입니다.”

 

—향후 목표, 행보는.

 

“김씨 사건 재심이 지연된 데 제 책임도 꽤 큽니다. 재심 청구할 당시 법원에 제출한 서면을 보면 많이 부족했어요. 정교하지 못했고 치밀하지 못했습니다. 그게 변호인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해임이 반복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한데요. 그러다 보니 좀 더 공부하고 노력해야겠다, 그래야 억울한 사람들의 시간도 단축시킬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도 합니다.

 

제가 처리를 약속한 (재심) 사건들 중에선 정말 오랫동안 기다린 분들이 있으십니다. 그런 분들 사건을 하루라도 빨리 해야 된다는 책임감, 무게 더 갖게 되고요. 일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장학회 활동을 더 열심히 하고 싶습니다.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이 상당히 많거든요. 그 아이들에게도 정말 필요한 사회적 지원이 제때 이뤄지는 게 중요하고요. 정말 한 아이라도 더, 꿈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게끔 하고 싶습니다.

 

가족들한테 잘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아이가 셋이거든요. 얘들과의 시간도 많이 가져야겠다는 욕심도 있습니다.”


김선덕·박진영 기자 jy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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