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김태웅의역사산책] 위인이 사라진 시대의 곤혹스러움

관련이슈 김태웅의 역사산책 , 오피니언 최신

입력 : 2025-02-17 23:15:48 수정 : 2025-02-17 23:15:47

인쇄 메일 url 공유 - +

평범한 사람을 대변하는 지도자 사라져
기성세대의 냉소주의가 빚은 원죄 아닌지

근래 들어와 청소년들과 만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고등학교 모교에서도 후배들에게 대학 진학의 의미를 가르쳐 달라는 요청이 쇄도하였다. 물론 모교이니 재능 봉사이다. 또 일부 학교의 교장은 연수 강의를 들은 뒤 자신의 학생들에게 인문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였다.

필자는 시간이 허락하는 한 이러한 요청에 부응하여 이들 학생과 마주하였다. 요즘 세상에 자식과도 밥상 위 대화가 힘든데 사범대학에서 예의주시하는 학교 현장의 학생들과 만난다니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이럴 때마다 후배나 동료들은 요즘 학생들에게 유행하는 아이돌 노래를 접하고 임하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이들 학생과 대화하려면 그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BTS의 노래를 언급하며 강의의 물꼬를 트곤 하였다.

김태웅 서울대 교수·역사교육

이어서 강의가 끝날 즈음에는 사범대학(師範大學) 교수로서 이들에게 혹시 우리 역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학자나 교육자가 누구냐고 묻곤 하였다. 대다수의 답변은 세종대왕이었다. 예상했던 답변이었다. 훈민정음 창제에서 학자로서의 창의성과 애민정신이 보인다는 점이 그 이유이다. 또 극히 일부 학생이 정약용을 언급하면서 실학의 집대성을 이유로 들었다. 이에 교육자로서의 면모를 들어보라고 추가 질문하니 어떤 학생은 정약용이 가족들에게 보낸 서신과 함께 제자들과 나눈 대화와 편지에서 교육자로서의 품격이 드러난다고 하였다.

그러나 결코 적지 않은 학생들이 필자의 이러한 질문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무엇보다 존경하는 인물을 학자나 교육자에 한정했기 때문이다. 혹시 필자가 특정 범주를 조건으로 제시하지 않았다면 쉽게 대답하지 않았나 하는 후회도 들었다. 그래서 질문을 바꾸어 세계사에서 이런 인물을 들어보라고 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기성세대가 위인전집과 국어, 도덕 수업 시간에 늘 접했던 페스탈로치, 헬렌 켈러, 갈릴레이, 뉴턴, 아인슈타인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건만 허사였다.

어느 때인가 영웅사관과 위인숭배론은 우리 사회의 금기가 되었다. 그것은 히틀러라든가 스탈린 같은 정치가들이 탁월한 능력을 가진 소수가 새로운 시대를 만든다고 역설하며 자신에 대한 개인숭배와 범죄 행위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악용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많은 이들이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는 가운데 이런 사관과 숭배론이 개인의 자유로운 삶과 사회의 민주적 발전에 엄청난 해독을 끼쳤다고 절감했기 때문이다. 이에 평범한 사람들의 역사와 생각에 관심을 기울이기를 권하였다. 이러한 권유는 결코 퇴행적인 행위는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 사회가 간과한 게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희망과 생각, 아픔을 대변한 역사 속의 지도자이자 사표(師表)마저 현실에서 사라졌던 것이다. 대신에 검증되지 않은 현재진행형의 인물을 존경한 나머지 그의 주장대로 과격한 행위를 벌였다는 보도에 아연실색(啞然失色)이 된다. 그것은 우리 개개인을 각자도생으로 몰아가는 시대적 조류와 더불어 팍팍한 삶에서 살아남기 위한 확증편향과 후안무치(厚顔無恥) 탓인지 모른다.

그러나 무엇보다 어느 사이인가 변질된 필자를 비롯한 기성세대의 공동체에 대한 오인과 냉소주의가 빚어낸 원죄는 아닐까? 별은 숭배해서는 안 되지만 별빛 때문에 칠흑 같은 밤하늘이 아름답다는 것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 역사 속의 별들을 다시 한 번 쳐다보는 을사년이 되길 기원한다. 그리고 가람 이병기의 시조 ‘별’을 헤아려 본다.

 

김태웅 서울대 교수·역사교육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김민주 '신비한 매력'
  • 김민주 '신비한 매력'
  • 진기주 '해맑은 미소'
  • 노정의 '시크한 등장'
  • 비비 '청순&섹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