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킴(CI KIM)김창일 화백이 창업주인 ‘아라리오산업’은 ‘아라리오갤러리 천안’에서 오는 18일부터 내년 3월 22일까지 ‘운보 김기창 전(展)’을 개최한다고 16일 밝혔다.
운보(雲甫) 김기창(1914-2001)은 근현대 한국 화단에서 전통 한국화의 현대적 재해석을 시도하는 데 선구적 역할을 한 화가다. 후천적 청각장애를 지녀 고요함 속에 살아간 그의 화폭은 비범하도록 역동적인 필치와 기운생동한 묘사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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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는 193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운보의 70여 년 작품인생이 지니는 미적 가치와 미술사적 의의를 재고하기 위하여 마련됐다. 1914년 서울 종로구 운니동에서 태어난 운보는 일곱 살이 되던 해 장티푸스를 앓은 후유증으로 청각을 상실했다. 1930년 어머니의 중개로 이당(以堂) 김은호(1892-1979)에게 사사한 그는 그림을 배운 지 반년 만인 1931년 제10회 조선미술전람회(이하 ‘선전’)에서 입선 및 등단하였다. 1937년에는 선전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수상하여 평단의 주목을 받았으며 1940년 추천작가로 선정된 이후 1944년까지 매년 출품했다. 해방 이후인 1946년 우향(雨鄕) 박래현(1920-1976)과 혼인하였고, 부인과 예술적 영향을 주고 받으며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하였다. 운보는 우향과 사별한 뒤 어머니의 고향인 충청도 청주로 낙향하여 1984년 ‘운보의 집‘을 완공했다. 이번 전시는 운보의 전 생애 화업을 망라하여 선보인다. 운보와 우향이 함께 제작한 합작도 및 우향의 대표작 일부를 함께 만나볼 수 있어 구성이 다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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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는 운보의 1930년대 초기 작품부터 1990년대 후기 작품들까지 모두 아우르는데, 첫 번째 전시장에서 영모, 화조, 풍속화의 대표 작품들을 보여주는 것에서 시작해 신앙화, 인물, 추상, 문자도, 바보산수, 청록산수 등 운보 시리즈의 대부분을 선보인다. 그중 운보의 영모도를 대표하는 특유의 거침없고 역동적인 필력과 말과 부엉이 각각의 표현에서 드러나는 기운생동한 묘사력과 그림 전반의 긴장감이 백미인 1950-60년대작 추정 ‘군마도’와 1972년작 ‘밤새(부엉이)’는 특히 눈여겨볼 작품이다. 청각장애로 인해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던 감정을 폭발적인 필력을 통해 그림으로 승화해 내는 운보의 영모도 중 단연 수작으로 인정받는 작품들이다. 운보의 화조도에서는 거침없고 비범한 구도와 섬세한 표현미가 돋보이는 1970년작 ‘비파도’와 1971년작 ‘무궁화 삼천리 금수강산’이 눈에 띈다. 광복 이후 새로운 화풍으로의 실험을 본격화하면서 입체주의적 경향을 선보였던 1953-1955년작 ‘노점’도 한국화의 새로운 가능성과 현대화를 모색하는 운보의 초창기 고민과 시도를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운보의 작품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가이자 한국화의 현대화라는 문제의식을 함께 공유하고 고민했던 우향 박래현의 작품도 일부 소개된다. 전시에 출품된 1950년대작 ’등나무와 참새’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이 부부의 대형 합작도인 4폭 병풍 작품이다. 우향이 먼저 등나무를 그린 뒤 운보가 참새를 그리고 글을 더한 작품이다. 우향의 힘차고 시원한 붓질과 과감한 구도가 돋보이는 등나무와 운보의 세밀한 묘사력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운보와 더불어 우향이 새로운 한국화를 모색하고 실현해 내던 시기의 대표작인 ‘불안’(1962), ‘작품’(1960년대)도 소개되는데, 당시 해외 미술계에서 유행하던 앵포르멜의 영향이 느껴지는 이 작품들에서는 대상성이 사라지고, 황색이나 적갈색의 추상성이 강조된 색면 덩어리와 매혹적인 번짐 효과가 두드러지게 표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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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보 김기창의 70년 작품 인생은 도전과 실험의 연속이었다. 일찍 찾아온 화단의 인정과 이후의 안정적 상태에 안주하지 않았고 끊임없이 실험했다. 작가로서 사적인 미적 탐구뿐 아니라 한국화의 현대화와 세계화라는 시대적 문제의식을 저버리지 않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새로운 시도를 거듭했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지점을 주목하며 시작되었다. 전시에서 소개되는 운보의 70년 작품 세계와 그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 우향의 작품들을 통해 도전하고 실험하는 작가로서의 운보의 미적 가치를 되새겨 볼 수 있는 기회다.
운보의 생년월일은 호적 상 1913년생으로 잘못 기록되어 있으나, 화가 본인의 회술에 따라 1914년 갑인년(甲寅年) 2월 18일 출생임이 확인된다. 운보의 생전에 출간된 자서전 및 전작도록에 해당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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