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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미의감성엽서] 구정아의 오도라마 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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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2-18 23:11:40 수정 : 2025-02-18 23: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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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모든 향을 모아 향수(香水)를 만들면 어떤 향이 날까? 아무리 상상력을 펼쳐도 상상이 안 된다. 천국과 지옥을 합할 수 없듯이 아무리 뛰어난 조향사도 그런 향은 결코, 결코 만들고 싶지 않으리라. 그 이유를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란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무시무시하게 잘 보여주었으니까. 그럼에도 최고의 조향사가 최고의 원료로 최고의 향수를 만든다면 언제라도 경의를 표하고 싶다. 오래전 장 폴 게를랭이 쓴 ‘향수의 여정’을 읽고는 향수도 엄연한 창조물이며 인고의 피땀 속에서 탄생한 예술품이란 걸 알았으니까. 그 후론 어떤 선입견과 편견 없이 향수 자체만을 즐기게 되었다. 어떤 향수든 그냥 기분 좋고 행복해지니까.

하여 설 즈음, 한국의 향기를 전시한다는 ‘구정아 ? 오도라마 시티’전을 보러 갔다. ‘세상엔 그저 평범한 것은 없다’는 자세로 손쉬운 일상의 소재를 다양한 매체와 결합하고 활용해 오감을 자극하는 그녀의 독특한 작업 방식은 익히 아는 터지만, 이번엔 향기 전시라는데 향기를 어떻게, 어떤 식으로 전시하지? 전시 제목이 ‘오도라마 시티’인데 오도(odor)와 드라마(drama)를 어떻게 결합해 보여주지? 엄청 궁금하고 흥미진진했다.

전시실에 들어서니 ‘잊을 수 없는 한국의 향기’를 적은 글들이 120개의 배너에 담겨 빽빽이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배너와 배너 사이를 숨바꼭질하듯 다니며 그 글들을 읽고 글 속의 향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는 재미가 아주 쏠쏠했다. 읽으면 읽을수록 향에 대한 공감도와 가슴 뭉클한 그리움이 송골송골 배어 나왔다. 그 글들은 2023년 6월25일부터 9월 말까지 3개월 동안 국내외 한국인은 물론 한국과 인연이 있는 600여명에게 오픈 콜과 온·오프라인 설문조사로 얻어낸 것이며 그중 반만 이곳에 전시했다고 한다. 놀라운 건 20~30대 젊은 층들이 어릴 적 할머니 냄새와 고향 집 냄새를 잊지 못할 향으로 기억한다는 점이었다. 세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한국인의 보편적 정서는 바뀌지 않는 걸까? 다행스러우면서도 참 신기했다.

1층 전시실을 나와 2층 전시실로 들어서니 텅 빈 방에 향기! 향기만이 가득했다. 600여개의 향기 중에서 선별한 17개의 향기가 16명의 조향사를 거쳐 소형 뫼비우스 링에 각각 담겨 천장 곳곳에 매달려 있었다. 그 링 아래 서서 코를 한껏 벌리고 눈을 감으면 정말 익숙하고 그리운 향내가 온몸을 감싸는 듯했다. 아, 좋다. 정말 좋다. 이런 식으로 향기를 전시하다니, 정말 놀랍다. 늘 새롭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가시와 비가시의 경계를 넘나드는 구정아의 남다른 작업에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내며, 구정아의 ‘오도라마 시티’ 향수가 출시된다면 꼭 사고 싶었다. 그녀처럼 내게도 향수란 언제나 곁에 두고 싶은, 대자연의 달콤새콤한 향과 인간의 추억이 만들어낸 황홀하고 그리운 멜로디 같은 거니까.

 

김상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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