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중독·폭력전과 등 요인 분리하면
조현병 폭력성, 일반인과 큰 차이 없어
국내선 정신질환자 범죄율 훨씬 낮아
조현병, 공포대상 되는 것은 ‘낙인효과’
환자 고립되면 폭력성 띨 가능성 높아
지속적 치료 받을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잔혹 범죄만 일어나면 조현병이다.”
“정신질환자 인권 타령에 일반인 인권이 침해당하고 있다.”
‘대전 초등생 피살’ 사건 가해자가 우울증 등으로 치료를 받은 사실이 알려진 이후 인터넷에서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조현병과 우울증이 잔혹 범죄의 원인으로 지목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특히 2019년 거주 아파트에서 방화 후 살인을 한 안인득 사건 이후 조현병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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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연구에서 조현병과 정신질환으로 인한 폭력성은 어느 정도로 나타날까.
최준호 한양대 구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최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신질환과 폭력성에 대한 연구는 그동안 조현병을 중심으로 이뤄져 왔고 이미 10여년 전에 조현병 자체가 유발하는 폭력성은 없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다만 약물과 알코올 중독 등 물질남용, 경제적 궁핍, 과거 폭력전과 등 폭력적 성향이 질병과 결합할 경우엔 일반인보다 폭력성이 높은 수치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조현병보다 폭력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최 교수가 전한 결론이 나기까지 세 차례 중요한 연구결과가 있었다. 미국에서 조현병 환자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존 모나한·1981)와 스웨덴·덴마크 국가데이터를 활용한 1만명 이상 대규모 연구(에릭 엘보젠·2010), 조현병과 폭력성을 연구한 논문을 메타 분석한 연구(시나 파젤·2013)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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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논문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조현병 환자의 폭력성은 평균 10%. 10명 중 1명의 조현병 환자가 폭력성을 보인다는 의미다. 평균 3% 수준인 일반인의 폭력성을 감안하면 조현병의 폭력성이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 교수는 “주목할 것은 각 연구에서 환자의 발병 이전 과거 폭력전과, 약물·알코올 중독 여부 등 다양한 요인을 분리해 분석한 폭력성”이라며 “폭력전과와 약물중독이라는 요소를 제외한 조현병이라는 단일 요소 하나만 놓고 보면 일반인과 비교해 폭력성에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온다”고 말했다.
스웨덴·덴마크에서 대규모로 진행한 연구의 ‘폭력적 행동 가능성 예측(Predicted probability of violent behavior)’을 살펴보면 비교가 쉽다. 연구팀이 정신질환(조현병) 유무, 약물·알코올 중독, 범죄전과 등으로 폭력성을 예측해보니 전체 인구의 폭력적 행동 발생률(2.9%)보다 비정신질환자·정신질환자의 폭력 예측은 낮게 나타났다. 반면 약물·알코올 중독이나 범죄전과는 정신질환자보다 높은 예측률을 보였다. 주목할 대목은 폭력전과가 있거나, 각 요인이 결합한 경우에는 수치가 급증했다는 점이다. 특히 폭력전과가 있는 정신질환자의 경우 위험도가 2배로 뛰었다. 정신질환과 약물·알코올 중독이 다 결합할 경우에 폭력성은 4배 이상 증가했다.
최 교수는 “이런 연구를 종합할 때 조현병 환자의 범죄는 조현병 병리와 직접 연관된 것이 아니다”라며 “조현병 환자가 저지른 범죄는 조현병으로 유발된 것이 아니라 기존에 이미 폭력성, 범죄성을 가진 사람이거나 약물·알코올 과용으로 폭력성이 높은 사람이 조현병에 걸렸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지적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국내 통계도 있다. 2016년 대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0.1%로, 비정신질환자의 범죄율(1.4%)보다 훨씬 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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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고립이 불러오는 ‘나비효과’
그래도 환청, 망상, 언어와해(횡설수설) 등의 증상이 일반인에겐 위협적으로 다가온다.
최 교수는 “조현병에서 환청이나 망상 등은 타인에 대한 폭력성이 아니라 본인의 생활을 지속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지속해 삶이 망가진다. 이 때문에 과거에 조현병은 ‘조기 치매’라고 불렸다”며 “조현병 발병 전 범죄나 약물 남용의 병력이 없는 환자가 병에 걸린 후 범죄나 폭력적인 행동을 갑자기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했다.
그런데도 조현병이 공포의 대상으로 남은 데에는 ‘낙인 효과’가 크다. 똑같은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일반인은 ‘사이코패스’ 등 범죄성이 부각되는 반면 조현병 환자는 질병에 초점이 맞춰져 잘못된 인식이 생기는 것이다.
최 교수는 “조현병의 폭력성과 관련한 연구들을 보면, 오히려 이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사회적 고립이 가속화하면 위험성은 더 커진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강조했다.
부정적 인식으로 취업 제한 등 사회적 제약이 많아지면 환자들은 치료를 중단하고 음지로 숨을 수 있다는 것이다. 통계적으로도 조현병에 대한 대중 관심도가 높아지면 같은 달 외래 환자 수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난다.
고립은 이들의 스트레스를 키우고, 약물·알코올 중독에 빠질 가능성도 높인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적인 치료 독려다. 특히 발병 이후 첫 5년이 중요하다. 약물·알코올 중독, 범죄 전력 등 다른 위험 요인 없이 조현병만 있는 환자 중에서 폭력성을 드러낸 경우 대부분 ‘발병 5년 내’였다. 처음 겪는 조현병 증상에 환자의 혼란이 큰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최 교수는 “조현병의 폭력성이 과장될 경우 자칫 치료가 가장 중요한 시기에 환자가 치료를 중단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며 “사회 안전이라는 관점에서도 치료 환경을 좋게 만들어 환자들이 적극적으로 치료받고, 사회로 돌아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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