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OTT철새’ 늘어 파격 변신
도라이버·동미새 등 5편 동시에 내놔
매일 시청 가능해 구독자 취향 저격
심의·규제 엄격한 지상파는 고군분투
인기 끈 정글밥, 분량 늘려 시즌2 공개
과거 간판예능 부활시켜 시청자 눈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드라마, 영화에 이어 예능 프로그램의 시장 주도권까지 흔들고 있다. 지상파에서 큰 관심을 받지 못했던 실험작이 OTT로 자리를 옮긴 이후 독창적이고 과감한 연출로 시청자를 사로잡는 등 기존의 예능 공식이 점점 허물어지는 형국이다. 지상파와 케이블, 종합편성채널 등 방송국들도 OTT 스타일의 시즌제 예능을 도입하고, 과거 흥행했던 프로그램을 부활시키는 등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지상파처럼 일일 편성 나선 넷플릭스
넷플릭스는 지난달 23일부터 ‘도라이버: 잃어버린 나사를 찾아서’(도라이버)를 매주 일요일에 공개하고 있다. 김숙, 홍진경 등이 인생의 희로애락을 조립한다는 취지로 게임, 분장, 벌칙, 여행, 먹방, 토크 등 가리지 않고 원초적 웃음을 주는 프로그램이다. 총 20부작으로 현재 3회까지 시청자들과 만났는데, 공개 이틀 만에 인기 차트 1위에 올랐고 현재까지도 대한민국 톱 10 안에 머물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2022년 7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방영된 ‘홍김동전’의 포맷을 가져왔다. 당시 출연진은 물론 박인석 PD를 비롯한 제작진 상당수가 다시 뭉쳤다. 지상파에서 저조한 시청률로 폐지됐던 예능이 OTT에서 화려하게 부활한 셈이다. 박 PD는 “그저 웃자고 만든 콘텐츠”라며 “다른 예능에서는 보기 힘든 다양한 콘셉트와 설정으로 차별화된 재미를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넷플릭스는 ‘도라이버’ 외에 ‘주관식당’(토요일), ‘동미새: 동호회에 미친 새내기’(월요일), ‘추라이 추라이’(수요일), ‘미친 맛집: 미식가 친구의 맛집’(목요일)까지 5편 예능 프로그램을 동시에 내놓으며 ‘일일 예능’ 시스템을 갖췄다. ‘본방사수’를 강조하는 지상파 TV와 달리,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콘텐츠를 ‘몰아보기’할 수 있다는 장점을 내세웠던 넷플릭스로서는 파격적인 시도다.
넷플릭스가 지상파의 문법을 채용한 것은 시청자들을 붙들기 위한 전략으로 읽힌다. 월 단위로 이용권을 구매해 원하는 작품만 골라본 후 구독을 해지하고 다른 OTT의 서비스로 갈아타는 이른바 ‘OTT 철새’가 늘어난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디즈니플러스와 쿠팡플레이 등 경쟁 OTT는 서비스 초기부터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주 2회씩 공개하는 방식을 활용해왔다.
유기환 넷플릭스 논픽션 부문 디렉터는 예능 편성 시도와 관련해 “1년 내내 매일 재미있는 예능들을 많이 선보이고 싶다는 의도에서 출발한 프로젝트”라며 “한국은 TV에서부터 매주 챙겨보는 예능에 익숙하기 때문에 구독자 취향을 더 저격하는 한편 매일 새로운 즐거움을 드린다는 마음에 시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상파 예능도 고군분투
넷플릭스가 예능 프로그램 분야에서 보폭을 넓히면서 기존 방송국들은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글로벌 자본력에 밀려 스타 출연진과 간판급 PD를 빼앗기는 와중에 방송 심의를 비롯한 각종 규제는 OTT보다 엄격하게 적용받는 이중고를 겪고 있어서다.
한경천 KBS 예능 센터장은 지난 7일 예능 신상프로그램 설명회에서 넷플릭스 ‘도라이버’를 언급하며 “OTT와는 심의나 규제가 완전히 다르다. 공영방송에서는 온가족이 볼 수 없다면 아무리 인기가 있어도 론칭(출시)이 쉽지 않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1박2일’(KBS), ‘라디오스타’(MBC), ‘런닝맨’(SBS) 등 장수 예능을 주무기로 삼았던 지상파는 역으로 OTT나 케이블 TV에서 주로 활용해온 시즌제 예능의 비중을 늘리고 있다. SBS는 지난달 27일부터 미지의 정글에서 직접 먹을 것을 구하고 요리를 하는 여행 이야기를 다룬 ‘정글밥2’를 방송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8부작으로 종영한 시즌1이 호평받으면서 이번 시즌은 12부작으로 분량이 늘었고, 페루와 카리브해를 배경으로 미식 탐험을 펼치는 중이다.
KBS는 배우 박보검을 앞세워 음악 프로그램 ‘더 시즌즈’의 새 시즌에 들어간다. ‘더 시즌즈’는 이름처럼 여러 개의 시즌으로 나뉜 심야 음악 토크쇼인데, 앞서 박재범, 이효리, 이영지 등 가수들이 진행을 맡았다. 이번 시즌의 프로그램 이름은 ‘박보검의 칸타빌레’로, 14일 처음 방송된다.
시즌제 예능은 선택과 집중 측면에서 유리하다. 전작을 통해 일정 부문 시청자 유입과 화제성을 기대할 수 있는 데다 이미 제작 공정을 갖춘 만큼 예산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과거 흥행에 성공했던 간판 예능을 부활시키기도 한다. MBC에서 지난 8일 방송된 ‘놀면 뭐하니’는 개그맨 이경규가 특별 출연해 ‘양심냉장고’를 재현했다. 1996년 ‘일요일 일요일밤에’ 속 코너로 등장했던 ‘양심냉장고’는 도로 위 정지선을 지키는 양심적인 주인공을 찾는 프로그램이다. 시민의식 개선에 영향을 끼친 전설적인 예능 프로그램으로 지금까지 회자될 정도다. MBC는 자체 유튜브 채널인 ‘14F’에서 독서 권장 예능으로 잘 알려진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를 21년 만에 웹예능으로 부활시키기도 했다. 자극적이고 원초적인 웃음 대신 온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착한’ 예능으로 차별화를 시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케이블·종편도 비슷한 양상이다. tvN은 배우 배두나를 MC로 보강해 ‘알아두면 쓸데없는 지구별 잡학사전’의 새 시즌을 최근 시작했고, JTBC는 시사 프로그램 ‘썰전’과 쿡방 예능의 원조격인 ‘냉장고를 부탁해’를 새 단장해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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