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주도로 13일 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줄곧 법안 철회를 호소했던 재계는 심각한 부작용을 우려했다. 법 개정으로 주주 소송이 남발되고 기업사냥꾼의 공격이 늘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개정 상법이 주식시장 ‘밸류업’이 아닌 국가경제의 ‘밸류다운’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재계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에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했다.

◆소송 남발에 신사업·과감한 투자 위축
재계에 따르면 개정 상법에서 가장 큰 독소조항으로는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가 꼽힌다. 기존에는 이사가 충실해야할 대상이 회사 하나였지만 개정안은 주주와 회사로 범위를 넓혔다. 이사가 ‘주주의 비례적 이익’에 충실하지 않았다고 판단되면, 상법을 근거로 이사에게 손해배상·배임죄 형사고발 등 소송을 남발할 수 있다. 주주의 이해관계는 천차만별이라 모두 만족시키기 어렵다. 소 제기 가능성으로 이사들이 몸을 사리면 신속한 경영 판단은 힘들다. 과감한 투자 결정과 신산업 진출도 저해된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이날 법안 통과 후 논평을 통해 “제조업이 주력인 우리 기업의 경우 중장기적 설비 투자를 위한 정상적인 의사결정까지 소송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아, 이사들은 회사의 미래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과감한 의사결정을 내리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한상의는 또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척박한 제도 환경을 만들어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을 투자지로 선택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기업 향한 투기자본 공격도 늘 듯
법 개정으로 해외 투기자본의 경영권 공격 수단도 늘어나게 됐다. 2018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이 현대차그룹을 공격한 사례처럼, 국내 기업을 노리는 사모펀드가 운신할 공간이 넓어진 셈이다.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한 해외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은 2019년 8건에서 2023년 77건으로 증가 추세다. 김창범 한국경제인협회 부회장은 지난달 국회를 찾아 개정안을 막아달라 호소하며 “2023년 기준으로 행동주의 펀드 공격 건수는 우리나라가 주요 23개국 중 미국과 일본 다음으로 많다”고 전했다. 김 부회장은 또 “2016년 엘리엇이 삼성전자에 설비투자 예산의 75% 수준인 30조원을 주주환원해달라고 요구하거나 2018년 현대차에 순이익의 4배 수준인 8조원의 주주환원을 요구했듯 과도한 경영 개입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규모가 작고 대응 수단이 부족한 중소·중견 기업은 특히 경영권 공격에 취약하다. 대한상의는 “기술력 있는 중소·중견기업이 외부 기업사냥꾼의 공격 대상이 되고, 경영권 방어에 치중함으로써 기술개발·시장개척 등 성장의지를 꺾게 될까 우려된다”고 했다. 중소기업중앙회도 이날 논평을 통해 “법무 전담 조직과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글로벌 기관과 펀드의 경영 간섭에 무방비로 노출될 위험이 크다”며 “위기 극복과 성장을 위한 재원이 경영권 방어에 분산돼 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수조·수십조원대 설비 투자가 필수인 장치산업, 초기 성장 과정에서 적자를 감수해야 하는 스타트업도 투자성과가 나오기까지 과도기를 견디지 못한 주주의 공격에 노출될 수 있다.
상법을 적용받는 기업이 지나치게 많은 것 역시 문제다. 재계는 주주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상법이 아닌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핀셋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자본시장법은 2600여개 기업이 대상이지만, 상법은 100만여 법인이 모두 영향권에 놓인다. 이 때문에 박일준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지난달 국회를 찾아 “상법 개정은 그야말로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격’이 될 수 있어 최대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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