加 퀘벡선 부모보험제도 운영
사회 합의로 노인도 세금 납부
단순 지원 정책 아닌 결단 필요
한국사회는 ‘저출산 덫’에 더욱 더 깊게 빠져들고 있다. 합계출산율이 2024년 0.75명으로 세계 최저수준인 것도 중대하지만, 초저출산현상(합계출산율 1.3명 이하)이 세계에서 최장기간인 23년째 지속되고 있다는 것도 큰 문제이다.
아이들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대한민국. 행정안전부 출생통계에 따르면 2024년에 아이가 단 한 명도 태어나지 않은 읍면동(행정동 기준)이 91곳으로, 2014년 8곳에 비해 10배 이상 폭증했다. 이 중 85곳이 면지역으로, 전체 면 1183곳의 7.2%가 ‘아이 울음소리가 멈춘 지역’이 되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출생아 수가 5명이 채 안 되는 읍면동이 2014년 142곳에서 2024년 697곳(전체 읍면동의 19.6%)으로 7배나 증가했다는 점이다. 특히 면지역은 620곳으로, 전체 면 중 절반(52.4%) 이상이 이 상황에 처해 있다.

충격적인 것은 아이 울음소리가 끊기는 현상이 이제 도시로도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2014년까지 아이가 한 명도 태어나지 않은 동(洞)지역은 없었지만, 2024년에는 5곳으로 늘었다. 5명 미만 아이가 태어난 동지역도 5곳에서 69곳으로 14배 정도 급증했다. 1980년대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던 표어가 이제는 “아이가 사라져 삼천리가 소멸”되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아이들이 사라진 지역에서는 연쇄적인 붕괴가 진행 중이다. 산부인과와 소아과가 문을 닫고, 어린이집과 학교가 사라지며, 문방구와 분식점 같은 아이 관련 상권이 몰락했다. 무엇보다 지역사회의 활기와 생명력이 사라지고 있다.
20년간 쏟아부은 저출산대책에도 출산율은 오히려 하락했다. 왜일까? 그간의 정책은 일부 양육비를 지원하거나 일부 시간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양육은 약 20년 이상의 장기 프로젝트다. 정책들이 양육 전 과정에서 소요되는 비용 모두를 지원해 줄 수 없으며, 육아휴직 등 시간서비스를 계속 제공해 줄 수도 없다. 결국 국민들은 여전히 출산을 부담과 고통으로 인식하고, 아이 낳기를 포기하고 있다. 아이를 가지고 싶은 ‘희망’이 현실 앞에서 ‘좌절’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같은 정책을 시행하는데도 서유럽과 북유럽 국가들의 출산율은 왜 1.5명 이상을 유지할까? 정책 이외의 ‘힘’, 바로 ‘사회문화의 힘’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정책이 양육비와 양육 시간을 형식적·소극적으로 지원한다면, 사회문화는 실질적·적극적으로 양육비를 줄이고 양육 시간을 늘리는 기능을 한다. 정책이 하드웨어라면 사회문화는 그것을 효과적으로 작동시키는 소프트웨어인 셈이다.
캐나다 퀘벡주의 사례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캐나다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고용보험을 통해 육아휴직 등을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10개주 중 퀘벡주는 2006년부터 별도의 부모보험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심각한 저출산에 직면한 퀘벡주에서 자영업자, 비정규직 등 고용상태나 계약형태에 관계없이 일하는 모든 부모에게 육아휴직 등을 제공하기 위해 독신자나 이미 출산을 완료한 고령층을 포함한 주민 대부분이 부모보험료 납부에 동의하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나라도 초저출산 탈출을 위해서는 과도한 사교육비 문제 해결, 한국형 부모보험 도입, 근로시간 단축과 유연근무제 확대, 가부장적 가족문화와 직장문화 타파 등 사회 전반의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하다. 이는 정책만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일시적인 지원금이나 표면적 정책이 아닌, 사회 구조와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담대한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다. 즉, 사회의 적극적인 개입과 역할이 요구된다.
퀘벡주의 사례는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그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핵심은 ‘아이는 모두의 미래’라는 사회적 합의였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사회를 붓는다’는 것은 단순한 재정 지원이나 정책 도입을 넘어선다. 이는 우리 사회의 가치관과 우선순위를 재정립하는 사회문화적 전환을 의미한다. 개인의 성공과 경쟁만이 아닌, 모든 세대가 다음 세대의 성장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 키워내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이런 ‘사회문화의 힘’이 작동할 때 비로소 우리는 23년간 이어진 ‘초저출산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삼식 한양대학교 고령사회연구원 원장·인구보건복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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