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인·산불·통상’ 시급 현안 집중
311만 자영업자 공과금·보험금 지원
관세 피해 수출기업에 금융지원 포함
혈세로 갚아야 할 적자성 채무 11.8%↑
일각 “내우외환 경제 풀기엔 역부족”
2024년 취약층 감액사업도 보강 안돼
정부 “국회 증액 요구하면 탄력 대응”
정부가 소상공인 311만명에게 공과금·보험료 50만원을 지원하는 등 12조원대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발표했다. 추경안에는 산불피해 주민을 위한 신축 매입임대 공급, 관세피해·수출기업 지원을 위한 금융지원 등 산불대응과 통상·인공지능(AI) 지원을 위한 사업이 포함됐다. 하지만 1분기(1∼3월) 역성장 우려가 제기된 상황임에도 내수 진작을 위한 대책이 부족한 데다 지난해 말 국회 본예산 심의과정에서 감액된 사업의 증액도 이뤄지지 않아 경기대응이나 취약계층 지원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18일 국무회의에서 이런 내용의 추경안을 의결하고, 22일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이번 추경은 △재해·재난 대응 3조2000억원 △통상 리스크 대응 및 AI 경쟁력 제고 4조4000억원 △민생 지원 4조3000억원 △기타(주요행사 개최 등) 2000억원으로 구성됐다.
정부는 연매출 3억원 이하 소상공인(311만명)에게 50만원 범위 내에서 전기·가스·수도요금 공과금 및 보험료를 대신 내주기로 했다. 이는 소상공인 1인당 월평균 영업비용(109만원)의 절반 수준이다. 중신용(4∼7등급)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6개월 무이자 할부를 지원하는 1000만원 한도의 신용카드도 한시 발급한다. 연매출 30억원 이하 사업자에게 사용한 카드 소비액 가운데 전년 대비 증가액의 20%를 최대 30만원까지 환급해주는 ‘상생페이백’ 사업도 시행한다. 다만, 대형마트·백화점, 쿠팡·네이버쇼핑 등 이커머스, 자동차 구매 등은 제외된다. 추가 소비 환급 효과가 영세 자영업자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환급금은 온누리상품권으로 지급된다.
신속한 산불피해 복구 지원을 위해 1조4000억원이 투입된다. 피해주민 대상 주택복구 용도 저리 대출(400호)이 이뤄지고, 피해지역 인근 신축 매입임대 1000호도 공급된다. 2027년까지 산림헬기 6대를 신규 도입하고, 산불특수진화대 위험수당을 월 4만원 신설한다. 싱크홀(땅꺼짐)과 같은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 1259억원을 추가 투입해 노후화되거나 위험한 하수관로·도로 조기 개보수를 지원한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으로 피해를 보는 수출기업을 위한 대책도 마련됐다. 미국 상호관세로 직·간접 피해가 우려되는 기업 대상으로 저리 대출 15조원을 추가 공급하는 등 특별자금 25조원을 확충한다. 통상 위기로 인한 고용 불안 우려에 대비하기 위해 ‘고용유지 지원금’ 요건을 완화(산업위기 선제대응을 요하는 경우 등 포함)하고, 지원인원도 3만명까지 확대한다. 정부는 또 국내 AI 생태계 혁신을 위해 AI의 두뇌 역할을 하는 그래픽처리장치(GPU)를 1만장 확보하기로 했다. 제품은 AI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의 H200과 블랙웰 제품이다. 정부는 아울러 AI 정예팀을 선발해 GPU 2000장을 빌려주고, 데이터 구매비용을 지원해 대규모언어모델(LLM) 개발을 뒷받침하기로 했다.
이번 추경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2.8%에서 3.2%로 커지고,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도 48.1%에서 48.4%로 높아진다. 국민 세금으로 갚아야 하는 적자성 채무도 885조4000억원으로 전년보다 11.8% 늘어난다.
정부가 2022년 이후 3년 만에 추경 카드를 꺼냈지만 내수 침체와 통상 악화 등 ‘내우외환’에 휩싸인 우리 경제 상황을 볼 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행은 최근 올해 1분기 성장률이 2월 전망치(0.2%)에 못 미치는 역성장 가능성을 우려하기도 했다. 12·3 불법 비상계엄 사태 탓에 지난해 말 국회 예산안 심의과정에서 감액만 이뤄지고 증액 절차가 생략되면서 긴급복지지원제도와 같은 취약계층을 위한 사업이 크게 위축됐는데, 추경안에서 보강되지 않은 점도 문제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필수 추경이라고 밝혔지만 민생보다 더 필수적인 게 있는지 생각해보면 필수적인 걸 다 담지 못한 실망스러운 추경”이라면서 “내수 부진이 상당히 심각하고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생각해보면 이 정도로는 현재 어려움을 풀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추경 증액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김윤상 기재부 2차관은 “국회에서 증액 요구가 있을 때 저희가 죽어도 안 된다고 할 이유는 전혀 없다”며 “추경의 목적에 부합한다고 하면 아주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대응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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