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병원인 의원급 의료기관의 고비용 의료서비스, 과잉 진료가 건강보험 진료비 지출 증가세를 주로 이끌고 있다는 국책연구기관의 분석이 나왔다. 건강보험 의료비 지출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만큼 의원급 의료기관이 불필요한 과잉 진료 대신 경증·만성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치료·예방 관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행위별 수가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권정현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21일 이런 내용을 담은 ‘건강보험 지출 증가 요인과 시사점’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보건의료 재화 및 서비스에 지출한 금액을 나타내는 경상의료비는 2009년 국내총생산 대비 5.9%에 머물렀지만 2022년 9.4%로 증가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9.2%)을 넘었다. 건강보험 재정지출 역시 중앙정부 재정 지출 증가율보다 높은 상황이다.
인구 고령화, 저성장 등으로 건강보험 수입 확충이 힘든 상황에서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지출 증가를 억제해야 한다고 권 연구위원은 밝혔다. 권 연구위원이 건강보험 청구자료를 이용해 건강보험 진료비 지출 증가 요인을 분석한 결과, 인구 1인당 (물가상승을 감안해 조정된) 건강보험 진료비 지출은 2009년부터 2019년까지 28.0% 증가했는데 이 중 ‘가격 요인’이 지출 증가의 76.7%를 설명했다. 여기서 말하는 가격 요인은 의료서비스 이용당 비용의 변화를 말한다. 반면 의료서비스 이용 변화에 따른 진료비 지출 증가를 의미하는 ‘수량 요인’과 인구구조의 변화에 따른 변화인 ‘인구 요인’의 기여도는 각각 14.6%, 8.6%에 그친 것으로 파악됐다. 권 연구위원은 “분석 결과는 가격 요인에 대한 점검이 효과적인 건강보험 재정지출 관리를 위해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함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진료비 지출을 서비스 유형별로 보면 입원서비스와 외래서비스 모두에서 가격 요인의 기여도가 확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12년 이후 외래서비스 가격 요인의 영향력이 가파르게 확대됐는데, 이는 고비용 의료서비스 이용 증가, 진료 강도의 변화, 수가의 상승 등이 배경이라고 권 연구위원은 분석했다. 의료기관별로는 의원급 의료기관의 가격 요인 증가가 2009년 대비 2019년 건강보험 진료비 지출 증가의 24.9%를 설명해 가장 기여도가 컸고, 다음으로 상급종합병원의 가격요인(17.0%), 종합병원급 의료기관의 가격요인(14.6%)이 뒤를 이었다. 동네 병원에서 시행하는 불필요한 각종 고비용 의료서비스 이용, 과잉 진료가 전체 건강보험 지출 증가세를 견인했던 셈이다.
권 연구위원은 이에 의원급 의료기관에 적용되는 행위별 수가제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의료서비스 항목별로 이미 설정된 가격을 책정·지급하는 행위별 수가제에서는 의료서비스 공급자가 진료량 및 진료행위를 스스로 통제할 유인이 많지 않은 만큼 현행 수가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에서는 병원 종류별 분업을 의미하는 의료전달체계가 충분히 확립되지 못한 상태여서 의원급 의료기관이 일차의료의 역할보다 상급 의료기관들과 경쟁하면서 과잉 진료를 제공할 유인이 확대되고 있다”면서 “의원급 의료기관은 경증 및 만성환자를 대상으로 치료 및 예방과 관리를 수행하는 일차의료 ‘주치의’ 역할을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권 연구위원은 이에 만성질환 대응 관련 의원급 의료기관에 대해 예방 및 관리의 포괄적 기능에 대한 보상과 지속적 환자 관리에 따른 성과 보상이 가능하도록 ‘묶음 지불제도’ 및 ‘성과기반 보상제도’를 활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권 연구위원은 또 “인구 요인이 건강보험 진료비 지출에 미치는 영향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건강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면서 “노화 및 노쇠를 예방하기 위해 건강 증진에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운동, 금주, 금연 등 개인 수준에서 건강 유지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예방 중심 건강관리를 지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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