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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감히… 잡귀야, 썩 물렀거라! [밀착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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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5-31 21:00:00 수정 : 2025-05-31 21: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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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맥을 잇다… 김종흥 장승 명인

한껏 인상을 찌푸린 채 무서운 얼굴을 드러낸다. 울퉁불퉁한 눈, 큼지막한 주먹코, 성글고 삐뚤어진 치아가 인상적이다. 외부의 나쁜 기운이 마을이나 사찰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기 위함이다. 장승 이야기다.

장승은 예로부터 민간신앙의 한 형태로 마을 입구나 길가 또는 절의 입구에 나무나 돌을 이용하여 세운 목상, 석상을 말한다. 단순한 경계표나 이정표 구실과 함께 잡귀와 질병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수호신으로, 때로는 개인의 소원성취를 기원하는 대상으로 역할을 해왔다.

김종흥(70) 장승 명인이 그의 작업장인 ‘목석원’에서 장승을 깎고 있다. 그가 조각한 장승은 모두 다른 표정과 형체를 가지고 있다. 장승은 깎는 작업을 끝났다고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의식을 치르고 지정한 장소에 세워야 비로소 완성된다. 2002년 국가무형문화재 제108호 목조각 이수자로 인정받았고, 2013년에는 한국예술문화재단총연합회로부터 장승 명인으로 지정받았다.

신라와 고려시대에는 ‘장생(長生)’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대체로 16세기 이후부터 장승으로 불렀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급격히 산업화·도시화된 이후로 그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경북 안동 하회마을에서 나무에 혼을 새겨 넣는 장인이 있다. 한국 장승의 명맥을 잇고 있는 김종흥(70) 장승 명인이다. 김 명인은 유년 시절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풍물놀이에 끼어 북이나 꽹과리를 치며 돌아다니길 좋아했고, 손재주도 뛰어났다. 젊은 시절엔 분재나 목공예를 하느라 생계를 걱정하기도 했다.

김종흥 명인(아래)이 아들 김주호씨와 하회별신굿탈놀이 공연을 펼치고 있다.

“분재를 하면서 아깝게 죽어 버린 나무를 어떻게 쓸까 고심하다가 장승조각을 생각해 냈어요. 죽은 나무에 생명을 불어넣고 싶었습니다.” 김 장인은 30대에 접어들면서 장승과의 동행을 시작한 계기를 설명했다. ‘우리 것이 우리 땅에 서야 한다’는 마음으로, 1992년 고향을 떠나 지금의 장승공원에 자리 잡았다. 장승 관련 문헌을 찾아보고, 발품을 팔아가며 전통 장승의 원형을 재현해 냈다.

장승공원인 ‘목석원’(나무와 돌의 동산)에는 제각기 다른 모양을 가진 장승들이 즐비하게 서 있다. 그곳에서 만난 김 명인은 성성한 백발과 수염을 휘날리며 힘찬 기합 소리와 함께 조각에 열정을 쏟고 있었다.

장승 명인1 김종흥(70) 장승 명인이 그의 작업장인 ‘목석원’에서 장승을 깎고 있다.
장승을 조각하고 있는 김 명인

김 명인의 장승 조각 퍼포먼스는 관객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그는 한국 장승문화를 계승하고 알리기 위해 전통 장승 및 창작 장승 만들기, 장승 조각 퍼포먼스 등 창의적인 도전을 계속해서 시도하고 있다.

근엄하고 과장된 이목구비의 전통 장승뿐만 아니라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한 익살스럽고 해학적인 표정의 창작 장승은 친근함을 담아낸다. 양반과 부네의 얼굴을 하고 하회탈의 인자한 미소를 보여주는 하회탈 장승은 많은 이의 눈길을 끌었고, 장승 명인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목석원’에 전시된 다양한 얼굴을 가진 장승들

1999년 4월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했다. 그날은 여왕의 생일이면서 김 명인의 생일이기도 했다. 김 명인은 하회탈춤을 뽐내고 여왕과 나란히 축배를 들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전 세계에서 주목받는 유명인사가 됐다. 그는 이후 국내는 물론 일본, 미국, 프랑스, 독일 등에서 전시 및 초청 공연(장승 퍼포먼스)을 펼치며 한국 장승문화를 전파해 오고 있다.

국신당 앞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 김 명인

장승은 김 명인에게 단순한 조형물이 아닌, 한국인의 정서와 정신을 담은 신성한 존재다. 그는 장승 조각을 하며 하회별신굿탈놀이 이수자로 상설공연도 벌이고 있다. 또 산주(山主·제사를 주관하는 사람)라는 직함을 갖고 하회마을에서 신을 모시는 5개의 신당을 관리하며 제사를 지내고 있다.

김 명인은 “마을을 지키던 장승이 세계 곳곳의 어둠을 물리치는 수호자 역할을 하는 명물이 되길 바란다”며 “장승은 우리 전통문화 유산이자 민족의 정체성이다. 많은 관심과 지원으로 체계적인 계승이 이뤄져 오랫동안 기억될 문화가 되길 희망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안동=글·사진 남정탁 기자 jungtak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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