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직 제명까지 추진 선 넘어
李 진실한 자기반성·성찰 통해
정치 개혁 한 축으로 성장 기대
이준석 후보의 막판 실책은 충격이었다. 마지막 대선 토론에서 그가 사용한 성적 표현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많은 국민이 경악했고, 여성들은 수치심과 불편함을 느꼈다. 성인지 감수성 결핍을 넘어 성폭력적 발언이라는 비판을 받아도 반박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참모진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들 모두는 대선이 끝나고, 그 이후에도 석고대죄하는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그것이 깊은 실망에 빠진 지지층과 국민의 마음을 다시 얻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다. 뒤늦게 나온 이준석 후보의 ‘조건 없는 사과’는 당연했지만, 더 빨리 나왔어야 했다. 그 지연은 유감이다.
그러나 마녀사냥식 퇴출 몰이 역시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그 발언이 대통령 후보 토론회에서 등장하게 된 맥락, 검증이라는 책무, 그리고 국민의 알 권리를 고려한다면,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범진보 세력이 형사 고발을 넘어 의원직 제명까지 추진하겠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원칙에 역행하는 일이다. 후보 아들의 일탈, 그리고 여성혐오라는 중대한 검증 이슈는 자취를 감추고, 모든 비판의 칼날은 오롯이 이준석 후보의 언행에만 향하고 있다. 대선 승리와 보수 리더 제거를 동시에 노린 정치적 기획이 아닌지 유권자들은 의심하고 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젊은 사람이 어떻게 그런 말을’이라는 식의 나이 중심 편견이다. 나이를 매개로 자격 있는 정치인과 없는 정치인을 나누고, 경륜 부족을 실수의 원인으로 손쉽게 연결짓는 논객들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저급한 표현은 나이가 많으면 용인된다는 것인가? 유시민이 “설난영 제정신 아니다”라는 정말 정신 나간 발언을 했을 때, 범 진보세력은 이준석 후보에게 들이댔던 것과 똑같은 잣대를 적용하지 않았다. 나이가 많아서? 같은 편이어서? 그는 사실상 진보진영 외곽에서 작가라는 이름 아래 지속적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 온 인물이다. 만약 ‘사과했다’는 이유로 그의 학력 비하와 여성 비하 발언에 관용을 베풀 수 있다면, 이준석 후보의 사과 역시 그에 상응하는 대응이 이뤄져야 마땅하다.
개혁신당 당원들은 하루아침에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았다. 이들이 느낄 좌절과 실망감은 얼마나 클까. 당 게시판에는 탈당을 알리는 글이 줄을 잇고 있다. 탈당은 민주적 권리이고, 그 자체로 분명한 의사표현인 만큼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그 실수할 자유를 보장하는 사회일수록 개인은 성장하고 공동체는 성숙한다는 사실 또한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런 믿음 위에서 다시 일어서려는 당원들의 의지 역시 가감 없이 존중받아야 한다. 그것이 저주와 증오라는 과거의 정치가 아닌 관용과 신뢰라는 새로운 정치를 열고자 하는 지극히 합리적인 태도다. 하지만 전제는 분명해야 한다. 이준석 후보와 당직자들이 철저한 자기반성을 거쳐 단단한 인권 감수성을 갖추고, 일신한 모습으로 전장에 다시 설 준비를 마쳤을 때만 그렇다. 진정한 싸움은 반성과 성찰에서 다시 시작된다.
이들은 10만명이 넘는 작지 않은 세력으로 결집했다. 국회의원 고작 세 명, 지역구 단 한 명뿐인 개혁신당에 기꺼이 뛰어들었다. 하지만 정치개혁의 꽃을 피워보기도 전에, 전대미문의 위기 상황에 직면한 셈이다. 진보세력은 10%에 한참 못 미칠 것이라 장담하고 보수세력은 결국 ‘준찍명’이라며 조롱을 멈추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1000명이 넘는 신규 당원이 유입되고 있다는 사실은 젊은 세대의 정치개혁에 대한 요구가 얼마나 간절한지를 보여준다.
개혁신당에 대한 이들의 지지는 충동의 산물이 아니다. 계엄세력과 여전히 단절하지 못한 국민의힘, 입법권력을 바탕으로 정치적 강행 처리를 반복해 온 더불어민주당. 이 두 거대 양당 사이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으려는 안간힘의 결과다. 그 중심에는 최초의 30대 여당 대표이자 젊고 새로움을 상징하는 이준석 후보가 있다. 이들은 단일화라는 익숙한 타협이 아닌, 완주를 통해 ‘완전히 다른 정치’를 하라며 이 후보를 압박했다. 그리고 그는 흔들림 없이 그 길을 갔다.
개혁신당이 온라인 공간에 과도하게 의존한 점은 분명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번 대선 토론에서 불거진 위기는 결국 이들의 정치적 미숙함과 정보 채널의 편협함, 일반 국민의 정서를 충분히 읽어내지 못한 결과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었다. 특정 세대에 호소하기보다는 더 넓은 유권자의 마음에 다가서는 담대한 정치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이제 이틀 뒤면 대선이 끝나고 숫자로 환산된 성적표가 주어진다. 이후 이들은 계속 결집할까 아니면 흩어질까. 나는 전자이길 바란다. 프랑스 마크롱이 단기 승부를 넘어 유럽 정당 지형을 재편했듯, 한국 정치에도 변화의 바람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믿음. 그 믿음이 꺼지지 않기를 바란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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