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구성원, 외부 이해관계자 신뢰 동시에 잃을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선택”
명품 브랜드 버버리가 경영 위기를 이유로 전 세계 1700명의 직원을 감원하겠다고 발표한 가운데, 신임 최고경영자(CEO)에게는 9개월 만에 약 48억원에 달하는 고액 보수를 지급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버버리는 최근 공개한 연간 보고서를 통해 조슈아 슐만 CEO가 지난해 9개월 동안 총 260만파운드(약 48억원)의 보수를 받았다고 8일 밝혔다. 그는 기본 연봉 135만6000파운드(약 25억원)에 더해 120만파운드(약 22억원)의 보너스를 받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국 출신인 슐만이 영국으로 이주하면서 발생한 이사 및 정착 비용도 대부분 회사가 부담했다.
새 주택 마련에 13만5171파운드(약 2억5000만원), 이삿짐 운송에 12만655파운드(약 2억3000만원)가 소요됐다. 매달 2만5000파운드(약 4700만원)의 주거 수당도 1년 넘게 지급받을 예정이다. 현재까지 5개월분이 지급된 상태다.
올해에도 슐만이 성과 목표를 달성하면 최대 560만파운드(약 104억5000만원)의 보너스를 받을 수 있다. 향후 3년 안에 버버리의 주가를 2배로 끌어올려 런던 FTSE 100 지수에 재진입시킬 경우 360만파운드(약 67억2000만원)의 인센티브도 추가 지급된다.
슐만은 미국 패션 브랜드 코치(COACH)의 전 CEO다. 버버리의 실적 개선을 위해 지난해 영입됐다. 그의 취임 이후 버버리의 주가는 약 50% 상승했으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수입 관세 부활 가능성과 미국·중국 소비 위축 우려가 여전히 리스크로 지목된다.
논란은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7월 퇴임한 전임 CEO 조나단 아케로이드 역시 약 150만파운드(약 28억원)의 퇴직금을 수령했다. 2021년 취임 후 3년이 채 되지 않아 물러난 아케로이드는 연봉, 연금, 현금 혜택을 포함한 금액을 보장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버버리의 이 같은 고액 보수 지급은 최근 실적 악화와 대규모 감원을 감안할 때 내·외부로부터 강한 비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회사는 지난해 3억8300만파운드(약 7145억원)의 흑자에서 올해 6600만파운드(약 1231억원)의 적자로 돌아섰다. 이달 초에는 오는 2027년까지 전체 직원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1700명을 감원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4000만파운드(약 746억원)의 비용 절감 계획에 더해 추가로 6000만파운드(약 1119억원)를 절약하겠다는 방침이다. 현재 버버리의 전 세계 직원 수는 전년 대비 약 870명 줄어든 8459명이다.

전문가들은 버버리의 이번 인건비 구조조정과 CEO 고액 보수 지급을 두고, 글로벌 명품 산업이 겪고 있는 양극화된 경영 전략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분석한다.
한편으로는 수익성 확보를 위해 대규모 인력 감축에 나서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최고 경영진 유치와 성과 인센티브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단기 주가 상승이나 경영진 성과에만 초점을 맞춘 결과로 보인다”며 “내부 구성원과 외부 이해관계자의 신뢰를 동시에 잃을 수 있는 위험한 선택”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버버리처럼 브랜드 가치와 윤리적 소비가 중요한 명품 브랜드일수록 단순한 숫자 이상의 리더십 ‘책임 경영’이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와 같은 고임금 CEO 전략이 과연 조직의 지속 가능성과 장기적 건강성을 담보할 수 있는 해법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제기되는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버버리가 고액 보수와 대규모 구조조정이라는 상반된 행보 속에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시장과 소비자의 시선이 더욱 날카로워지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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