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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저출생 탈출 총력전 펼치는 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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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6-08 22:50:59 수정 : 2025-06-08 22:5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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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620조원 쏟아부은 日
2024년 합계출산율 1.15명 그쳐
韓은 日보다 더 빠르게 늙어가
아이 낳고 싶은 나라 만들어야

일본에 입국해 둘째 아이 유치원에 처음 갔을 때였다. 주임 선생님과 편입 상담을 하고 나서 함께 원내를 둘러봤다. 널찍한 교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 넓은 공간을 4세반 아이들만 쓰는 건가요.” 대답을 듣고 나니 괜한 질문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4세반으로 올라가는 아이들은 9명뿐이지만, 원래 정원은 30명이거든요.”

며칠 뒤 부모 면접이 있었다. 원장 선생님은 신신당부를 했다. “입학식 날 부모님도 꼭 와 주세요.” 4세반 편입생은 우리 아이가 유일하단다. 5세반에도 한 명이 더 들어와 총원이 6명으로 늘었다고 했다. 그런데 정작 행사에 가 보니 유치원 새 학기의 주인공이어야 할 3세반은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야 알게 된 것이지만, 입학 희망자가 얼마 안 돼 새로운 반을 구성하기 위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한다.

유태영 도쿄특파원

맞벌이의 증가로 늦게까지 돌봐주는 보육원(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는 부모가 늘고, 유아교육 무상화로 사립 유치원 비용 부담이 작아져 공립 유치원 인기가 계속 줄고 있다고는 하지만, 일본에서 소자화(少子化)라고 부르는 저출생 현상이 역시 가장 큰 이유일 터다. 인근 다른 시립 유치원들도 한 반 인원이 정원의 3분의 1∼2분의 1 수준이고, 마찬가지로 3세반을 구성하지 못한 곳이 있다.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0% 이상인 것을 ‘초고령사회’라고 부른다. 일본은 2005년 진입했다. 한국보다 19년 빨랐다. 자연히 한국보다 먼저 대책을 세워 시행했다. 정부 차원에서 나선 지는 약 30년 됐고, ‘저출산사회대책기본법’이 시행된 2004회계연도부터는 관련 예산이 본격 투입됐다. 그간 정부가 쓴 돈은 66조엔(약 620조원)을 헤아린다.

일본이 출산·육아 지원에 얼마나 적극적인지는 피부로 느낄 때가 많다. 구청에 전입신고를 하자 아이들한테는 건강보험증 외에 아동의료증이 추가로 나왔다. 물론 건강보험료는 똑같이 내지만, 아동의료증을 제시하면 병원비도 약값도 받지 않는다. 만 18세 이하 자녀를 대상으로는 월 1만엔(약 9만5000원)씩 아동수당도 지급한다. 자녀 나이가 어리거나 셋째 이하이면 더 많이 준다.

도쿄도는 특히 진심이다. 0∼18세 자녀를 키우는 가정에 1명당 월 5000엔을 지원하는 ‘018 서포트’ 사업을 올해도 계속한다. 육아 비용이 지방보다 더 많이 드니, 그중 일부를 도가 보전해주겠다는 취지다.

도쿄도는 이밖에 인공지능(AI)을 활용해 결혼 희망자 간 맞춤형 만남을 지원하고, 미래의 임신·출산을 위한 난자 동결 비용 지원 사업을 전국 최초로 실시했다. 올해 하반기에는 보육료 무상화를 둘째아이에서 첫째아이까지로 확대하고, 무통 분만 비용도 지원할 계획이다.

그럼에도 일본 출생아 수는 2016년 처음 100만명 이하를 기록하더니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줄고 있다. 지난해에는 전년보다 5.7% 감소한 68만6061명이 태어났다고 한다. 출생아가 70만명을 밑돈 것은 1899년 관련 통계 작성 후 처음이다.

작년 합계출산율은 1.15명. 도쿄도는 2023년 0.99명보다 더 떨어진 0.96명이었다. 전국 도도부현 중 최저치다. 도청이 출산·육아 지원에 아무리 애를 써도 통근시간 전국 4위, 시간외근로 공동 1위, 교육비 전국 평균 대비 2배, 신축맨션 평균가 1억엔(9억4000만원) 돌파라는 각종 악조건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었던 셈이다.

저출생은 이처럼 고용, 주거, 보육, 교육, 의료 등 여러 분야가 난마처럼 얽힌 문제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아이를 낳고 싶다는 희망과 비전을 제시해주고 있는가.’ 6·3 대선을 앞두고 내심 이런 논의가 경쟁적으로 분출하길 바랐다. 하지만 세 번의 TV 토론을 보고 남은 건 각 후보자의 과거 발언·행동을 꼬투리 잡은 네거티브 공세뿐, 저출생·고령화 해법에 관한 진지한 논의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일본에선 지난 4일 출생아 70만명이 붕괴했다는 통계가 발표되자 “쪼그라드는 일본, 흔들리는 경제 기반”, “충격적”이라는 한탄이 이어졌다. 먼 산 불 보듯 할 일이 아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75명. 한국은 일본보다 더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


유태영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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