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주변 잠재적 위협 직면… 태평할 수 있나

오는 15일 알래스카에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만날 예정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당사국인 우크라이나가 빠진 채 트럼프가 러시아에 어떤 양보를 할지 국제사회가 숨죽이고 지켜보는 중이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영토를 푸틴에게 성급하게 양도해 버릴지 우크라이나는 물론 미국에 안보를 크게 의존하는 모든 나라가 우려하고 있다.
트럼프가 세계 다른 지역의 정치에 제멋대로 개입하는 습관은 이제 국제사회의 일상이 되었다. 예를 들어 트럼프는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주민을 몰아내고 지중해 연안 리조트를 건설하겠다는 황당한 계획을 발표해 세계를 경악시켰다. 리조트의 실현 가능성은 불투명하지만, 이스라엘은 지난 8일 가자지구를 군사적으로 점령하겠다고 발표했다.
팔레스타인의 주권과 주민에 대한 트럼프의 태도는 이스라엘 정부가 국제법을 무시하고 ‘인종청소’에 가까운 민간인 폭격, 식량 및 의료 지원 제한 등 국제법을 위배하는 정책을 펴는 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의 야만적 테러와 인질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이스라엘의 대응은 분명 과잉이다. 이미 수만 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수백만 명이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7일부터 미국은 세계를 대상으로 높은 관세를 부과함으로써 1930년대 대공황 시대의 수준으로 회귀했다. 불행히도 1930년대는 블록 간 경제전쟁으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치달았던 위험한 시기다. 이번 2025년 트럼프의 관세 압박에 굴복한 대표적인 사례가 유럽연합(EU), 일본, 그리고 한국이다. 형식적으로 이들은 15% 수준의 관세에 합의했지만 실질적으로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의 불평등조약과 다름없는 굴욕적인 협상 결과였다.
한국, 일본, EU는 미국의 군사력에 의존하며 동시에 주변의 잠재적 위협에 직면해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한국과 일본은 중국과 북한의 위협에, 그리고 유럽은 러시아의 협박에 노출됐다. 미국의 보호가 없으면 안보 자체가 위험해지는 취약한 구조다. 유럽이 초기에 보복관세 부과 가능성을 언급하다가 결국 꼬리를 내린 이유다. 반대로 캐나다, 멕시코, 브라질, 인도 등 미국의 군사력에 의존하지 않는 나라들 또는 당장 안보 위협을 받지 않는 국가들만이 미국에 저항하는 모습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80주년을 맞는 세상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한 지경이다.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거나 수정하려는 중국과 러시아의 의지는 강하지만 미국은 아예 이를 지키려는 의지가 없다. 더 심각한 현실은 미국이 트럼프라는 한 인물에 의존하는 독재로 돌변했고, 미국에 의존하던 세계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돌입했다는 점이다. 아무리 트럼프에게 잘 보이려고 아양을 떨고 양보하더라도 그의 변덕에 따라 우크라이나처럼 영토를 내어주거나 가자지구처럼 지도에서 사라질 수도 있는 세상이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두려운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평안한 한국의 분위기는 놀랍다. 일본이나 유럽하고 비슷하게 관세협상을 마무리했으니 괜찮다고 자평하며 우리의 장점을 살려 트럼프와 협상하면 방위비도 선방할 수 있다는 태세다. 대만을 향한 중국의 위협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여기며 소극적 관망세다. 이런 무감각이야말로 가장 경계할 태도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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