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찾아봐도 여기만 한 곳이 없더라고요.”
쿠팡 물류센터에서 만난 40대 학원 강사 A씨는 이렇게 말했다.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않아 낮에 일하고 또 일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루이틀 전 신청하고 근무 전날 취소할 수 있다는 점과 어떤 서류나 신체 검사, 교육도 요구하지 않아 언제든 왔다 갈 수 있다는 점도 들었다. 알고리즘에 쿠팡이 입력된 후 계속 뜨는 구직광고도 ‘원하는 날짜에 바코드만 찍어도 일 최대 급여 24만원’, ‘급구 단기알바 채용 중’이라는 문구를 자랑스럽게 내걸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물류센터에서 만난 6명의 근무자 중 5명은 모두 ‘투잡’ 이상을 뛰고 있었다. 33세 직장인이라고 밝힌 여성 B씨는 “최근 이직했는데 월급이 줄었다”며 “그래서 급하게 찾은 일자리가 물류센터”라고 했다. ‘9·6 근무하고 오면 잠은 언제 자나’라고 묻자 “안성까지 오는 데 2시간 걸리지 않나. 셔틀에서 4시간 잘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받은 일당은 12만원 남짓이었다.
물류센터 상차 작업은 물건이 쏟아져 내려오는 레인 4개를 5명이 맡는다. 기자와 같은 라인에 배치된 중년 남성 C씨는 물류센터에 매주 주말 나온다고 했다. “또 초보자가 왔네”라며 투덜거리던 그는 “여름휴가를 받아 3일째 나왔다”고 했다. A4용지 박스부터 전자레인지, 고양이 용변 모래 등의 상품이 내려오면 지게차로 옮길 수 있도록 플라스틱 판에 쌓는다. 물건을 키보다 높게 쌓아 떨어지지 않도록 랩으로 두르는 작업도 한다. 손에 익지 않아 버벅이면 C씨는 “아이씨, 그렇게 하면 안 되지”라며 눈치를 줬다. 그도 그럴 것이, 단 10초면 박스가 적채돼 빨간불이 들어온다. 관리자는 그 구역의 가장 숙련된 사람에게 ‘연대 책임’을 지우고 “빨리 처리하게 도우라”고 재촉했다.
무엇보다 괴로운 건 한시도 쉴 수 없는 업무 강도였다. 오전 4시 야간조가 퇴근하면 레일 두 개를 한 사람이 맡는다. 눈칫밥을 줬지만 C씨가 퇴근한다는 사실에 두려움이 앞섰다. 인공지능(AI)이 조절한다는 컨베이어벨트 속도는 사람이 줄었는데도 느려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은 지치는데 강도는 높아졌다. 랩을 두르고 지게차로 옮기면 레인은 또다시 박스로 쌓여 있었다. 그 사이 박스가 또 밀려오면 물건이 파손됐고, 관리직의 호통이 이어졌다. 9시간 근무 중 딱 1번 갈 수 있었던 휴게실에 적힌 ‘우리의 파손 현황 주간 529만7383원’의 의미를 그제야 알았다. 컨베이어벨트는 6시간 동안 쉬지 않고 돌아갔다. 얼음물이나 아이스크림은 그림의 떡이었다.
근무자들이 물류센터에 온 사정은 제각각이다. 다만 급전이 필요해 여러 일자리를 전전하고 있다는 건 같았다. 이미 임금이 적거나 불안정한 노동환경에 놓여 있어 하루 종일 일하고도 또 스스로를 밤샘 노동에 바쳤다. ‘자유롭게 선택하는 일자리, 일하는 만큼 돈 버는 곳’이라는 플랫폼 노동의 혁신. 그 대표 주자로 여겨진 쿠팡은 ‘당일 주문 익일 배송’이라는 구호로 올해 2분기에만 12조원에 육박하는 매출을 올렸다. 그 이면엔 절박한 생계형 노동자들이 일회용으로 투입되고 있다. 좋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과로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밤샘을 과연 ‘자발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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