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KBS의 2부작 다큐멘터리 ‘인재전쟁’이 “올해 본 가장 무서운 프로그램”이라고 불리며 화제다. 우리나라의 ‘의대 쏠림’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공대에 미친 중국’(1부)과 ‘의대에 미친 한국’(2부)의 대비되는 현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는 이가 적지 않다.
자식을 위해 집 팔아 학군지 전세살이를 감행할 만큼 교육열이 높은 것은 한국이나 중국이 마찬가지다. 다만, 지향점이 의대냐 공대냐로 나뉘고, 그 차이가 만들어낼 결과가 예측 가능하기에 이 프로그램을 보고 두렵다는 반응이 쏟아지는 것 같다.

방송은 “과학자가 돼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중국 학생과 “의사가 돼서 롯데월드가 보이는 곳에서 살고 싶다”는 한국 학생을 대비한다. 마치 한국 학생들은 오로지 부자가 되기 위해 의대를 목표로 한다는 것 같아 씁쓸하다. 사실 그렇다 해도 개인의 선택과 노력을 비난할 수는 없다.
한국 학생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사교육 시장에서 ‘○○○ 경시반’, ‘의대반’, ‘특목고반’을 들어가기 위해 레벨테스트를 본다. 고등학생인 내 아이의 평범한 동네 수학 학원조차 ‘SKY반-Pre의치대반-의치대반’으로 나뉜다. SKY(서울대·고대·연대) 공대를 포기하고 지방 의·치대를 선택하는 현실이 학원 레벨에도 반영돼 있다. 고등학교의 경쟁력도 의대를 몇 명 보냈는지로 평가받는 것이 대한민국 교육의 현주소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해도 괜찮은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어렵게 취업해도 정년까지 버티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더구나 이공계 대학 진학 후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연구원·교수로 자리 잡아도 의대를 나와 취업·개원하는 전문의 수입(평균 2억3700만원, 2020년)을 훨씬 밑돈다. 의대가 부모세대의 불안과 기대가 투영된 보험이자 투자가 된 이유다.
결국 의대 만능주의는 ‘원인’이 아니라 고령화 시대에 불안한 일자리와 부족한 사회보장, 직업에 대한 불균형한 보상체계가 만들어낸 ‘결과’인 셈이다.
문제는 그렇게 만든 최우수 인재들이 의대에 진학해 피부과, 성형외과, 안과 등에만 몰리면서 의학 발전은커녕 필수·지역의료가 붕괴 위기에 놓였다는 점이다. 나아가 이 쏠림현상은 국가 경쟁력을 잠식한다.
지난 1월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중국의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의 등장은 중국 정부가 10년 전부터 대학에 대대적으로 투자하고 ‘중국제조 2025’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첨단산업을 집중 육성했기에 가능했다. 미국에서 유학하며 실력을 키운 중국 엔지니어들이 본국으로 돌아와 창업하고 중국 기술 발전에 기여하는 것도 단순히 애국심이 아니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이다. 그나마 공대를 선택한 한국 인재들이 해외로 떠나 돌아오지 않는 현실과 대조적이다.
우리가 의대 입학 정원을 놓고 갈등과 희생을 치르는 동안에도 중국은 제2의 량원펑(딥시크 창업자) 배출에 모든 역량을 쏟고 있다. 의대 블랙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우리는 언젠가 중국 AI 의사에게 진료받는 날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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