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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공존의 시대, 반달가슴곰과 함께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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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9-01 22:53:58 수정 : 2025-09-01 22:5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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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와 국립공원공단은 2004년부터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해 왔다. 그 결과 현재는 90여 마리의 반달가슴곰이 지리산과 덕유산 일대에 터를 잡고 살고 있다.

우리 산하를 누비던 반달가슴곰이 남한에서 자취를 찾기 어렵게 된 데는 뼈아픈 근현대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시행한 유해조수 구제령, 6·25전쟁으로 인한 산림 황폐, 1970년대 이후 급속한 산업화와 불법 밀렵은 반달가슴곰의 생존을 위협했다. 결국 반달가슴곰은 숲에서 사라져 갔고, 우리의 기억과 관심, 그리고 역사 속에서도 점차 밀려났다.

박영철 강원대 산림과학부 교수

그러던 중 1990년대 후반, 야생 반달가슴곰의 존재가 다시 확인되면서 이들의 멸종을 막기 위한 복원의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논의됐다. 2004년 러시아 연해주와 북한 지역에서 들여온 반달가슴곰 6마리가 지리산에 방사되며 복원사업이 시작됐다. 이후 개체 수는 꾸준히 증가해 이제 일부 곰은 지리산을 넘어 덕유산 지역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이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지역주민들에게는 농작물 피해와 안전에 대한 불안을 야기하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일본처럼 ‘곰과 사람 간 갈등’이 우리나라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반달가슴곰 개체 수가 1만마리 이상으로 매우 많은 편이다. 한국은 아직 100마리도 채 되지 않는다. 분포 지역 역시 지리산과 덕유산 일부에 국한돼 있다. 유전적으로도 일본 반달가슴곰과는 다른 아종으로 행동 생태에도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일본처럼 된다”는 단순비교는 부적절하다.

반달가슴곰 서식지가 계속 제한된다면 수용력을 감소시켜 사람과의 갈등을 증가시킬 수 있다. 또 반달가슴곰 서식 밀도 증가는 개체 간 경쟁을 심화시키고 근친교배로 인한 유전적 다양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반달가슴곰 복원의 궁극적인 목표는 지리산에서 설악산까지 백두대간을 따라 반달가슴곰이 원래의 서식지에 다시 정착해 사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남부권역만이라도 지리산, 덕유산, 속리산을 잇는 서식지 간 생태이동로를 확보해 개체 분산을 촉진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지리산 주변 농가 피해도 줄일 수 있다.

연결은 곧 회복이다. 반달가슴곰이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생태이동로는 단지 한 종을 보전하기 위한 인프라가 아니다. 그것은 다양한 생명이 연결되고, 사람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마지막 끈이기도 하다.

물론 곰 복원과 함께 국민의 안전을 위한 장치도 필요하다. 현재로서는 곰과 직접 마주쳐 인명 사고가 발생할 확률은 극히 낮지만 등산객들이 보다 안심하고 산을 오를 수 있도록 곰 스프레이의 휴대 허용 등 현실적인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

반달가슴곰 복원은 단순한 한 종의 부활을 넘어 근현대사로 피폐해진 생태계를 회복하고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상징적인 사업이다. 우리는 이제 겨우 복원의 주춧돌을 놓았을 뿐 아직 서까래 하나도 얹지 못했다.

앞으로 환경부와 국립공원공단은 DMZ에 출현하고 있는 반달가슴곰의 마중물이 될 설악산 개체군 조성, 남부권역 분산을 위한 생태이동로 구축, 덕유산과 속리산으로 분산 중인 수컷 아성체들을 기반으로 한 안정적인 분산 개체군 형성 등 지리산 복원 후속사업을 체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반달가슴곰이 백두대간의 생태길을 따라 다시 한반도 전역으로 뻗어 나갈 수 있도록 지금 필요한 것은 망설임이 아닌 꼼꼼하고 체계적인 실행이다.

 

박영철 강원대 산림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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