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층 민심과 갈수록 괴리 심각
대구·경북서 국힘 무조건 찍어줘
TK 민심이 변해야 보수도 바뀔 것
8월 전당대회 과정에서 보여준 국민의힘의 행태는 실망스럽다. 국민의힘은 새 당 대표로 초강경 반탄(탄핵 반대) 성향의 장동혁 의원을 선택했다. 그는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반대하고 아스팔트 우파와의 연대를 강조한다. 경선에서 찬탄파(탄핵 찬성파) 포용을 약속한 김문수 전 대선후보에게 20%를 반영하는 일반 국민 여론조사에서는 열세였다. 그러나 80%를 반영하는 당원 선거인단 투표에서 뒤집었다. 국민의힘이 강성 당원을 중심으로 중도확장과 쇄신이 아닌 우경화와 내부결속을 선택한 것이다.
장 대표의 언사는 심각한 우려를 낳는다. 그는 “단일대오에서 이탈하고 내부총질을 하면 결단하겠다”며 찬탄파 배제를 경고했다. 전당대회 연설회에서 소란을 일으켰던 극우 유튜버 전한길씨에 대해서는 “의병처럼 밖에서 적을 막아주고 당과 함께 싸웠다”고 평가했다. 또 장 대표는 “모든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 정권을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했다. ‘국민’이나 ‘중도’가 아닌 ‘우파 시민과의 연대’는 극우 유튜버가 즐겨 사용하는 표현이다.

전당대회 전후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층의 생각은 일반 국민과 크게 달랐다. ‘당심과 민심의 괴리’ 현상이다. 일반 국민 상대 조사에서는 대부분 조경태 후보가 1위였지만, 당 지지층에서는 친윤(친윤석열)·친길(친전한길) 성향인 김문수·장동혁 후보가 선두를 다퉜다. 국민의힘은 전씨와 같은 극우세력의 전당대회 개입을 차단하기 위해선 당 대표 선출 방식을 손질했어야 했지만, 친윤 지도부는 수수방관했다. ‘당원투표 80%, 국민여론조사 20%’ 대신 국민여론조사를 최소한 50%로 높였어야 했다. 그랬다면 ‘윤 어게인’을 외치는 친윤·친길 후보들도 득표전략을 민심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바꿨을 것이다.
탄핵 이후 국민의힘은 변화와 진화를 거부하는 ‘갈라파고스 정당’이 되어가고 있다. 세상과 동떨어진 절해고도처럼 중도층을 비롯한 민심과 갈수록 괴리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가장 두드러진 지역이 TK(대구·경북)다. TK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언론에 등장한 것은 1980년대 초반으로 기억된다. 박정희에 이어 12·12로 집권한 신군부가 등장하며 대구·경북 출신이 요직을 싹쓸이하자 이들을 일컫는 통칭으로 사용됐다.
최근 TK 표심은 평균적인 일반 민심과 다른 양상을 보였다. TK 민심은 유독 보수적이다. 지난 4월 윤 전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 직전, 일반 국민은 탄핵 찬성여론이 높았지만 TK만 탄핵을 기각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다른 모든 지역에서 정권교체를 희망하는 여론이 높았지만 TK만 절반이 넘는 응답자가 정권 연장을 희망했다.
과거 TK는 이러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때는 국채보상운동에 앞장섰으며, 해방 전후 대구는 ‘한국의 모스크바’로 불릴 정도로 진보적인 도시였다. 1960년 2월28일 자유당 부정선거에 맞선 대구 고교생들의 2·28의거는 4월혁명의 도화선으로 평가받는다. TK가 달라진 것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잇따라 집권하면서다. 이어 이명박, 박근혜정부가 들어서며 보수 성향이 강화됐다.
민주 정치에서 합리적 견제·대안 세력의 존재는 반드시 필요하다. 집권세력이 아무리 선의로 포장했다고 해도 견제받지 않은 권력은 필연적으로 오만해지고 일탈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현재 국힘의 의석 수와 지지율로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이 쟁점 법안을 일방적으로 통과시켜도 국민의힘은 속수무책이다.
장 대표는 “야당 역할을 제대로 해 지지율을 올리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계엄·탄핵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한 어떤 정부·여당 비판도 일반 국민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 민심을 외면한 채 강성 당원으로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 국민의힘은 보수정당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했다. 국민의힘의 변화는 ‘보수의 심장’인 TK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TK 사람들은 더는 국민의힘 소속이라고 해서 무조건 표를 몰아줘서는 안 된다. TK가 변해야 국민의힘이 정신 차릴 것이다. 그래야 한국의 보수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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