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차원의 방어시스템 마련해야

정보통신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은 우리에게 전례 없는 편리함을 제공하고 있다. 스마트폰 하나로 금융 거래, 쇼핑, 문화생활까지 손쉽게 할 수 있으며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은 우리의 일상을 더 효율적이고 윤택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급속한 기술 발전의 이면에는 큰 역설이 존재한다. 기술이 제공하는 편리함이 사회의 근간인 신뢰를 위협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 개인정보 보호 문제가 있다.
정보화 사회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음은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미국 정부효율부가 국세청의 미국민 개인정보에 접근하려는 시도를 법원이 불허한 사례는 정부조차도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수 없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또한 중국의 인터넷 서비스 기업들이 자국 외 국가들의 개인정보를 은밀히 수집하고 있다는 비판은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문제로 대두되었다.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가 틱톡을 폐쇄하며 개인정보 보호와 국가 안보의 경계를 분명히 한 것처럼 개인정보 보호는 그 어떤 문제와도 분리할 수 없는 현실적 과제가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왜 많은 기업과 정부가 개인정보 수집에 집착하는 것일까? 데이터는 21세기의 원유라는 말처럼 방대한 데이터는 중요한 자산으로 인식된다. 기업들은 이를 통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수집된 정보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위협하고 제약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편리함을 위해 자신의 권리를 희생할 수 있을지 답은 뻔하다. 그동안 우리가 사생활 침해에 대해 너무 안일하게 대처하고 있지 않았는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AI 기술의 급격한 발전은 개인정보 침해와 감시의 위험성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 묘사된 빅 브러더나 미셸 푸코의 파놉티콘 개념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미 초소형 드론과 폐쇄회로(CC)TV 데이터의 오남용 가능성은 현실적인 위협으로 다가왔다. 최근 연이은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들은 이러한 우려가 단순한 기우가 아님을 증명해 준다. SKT 해킹, KT의 무단 소액결제 사건, 롯데카드의 해킹 등은 디지털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정보 보호의 중요성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한다.
그렇다고 해서 디지털 시대의 편리함을 포기하고 아날로그 시대로 회귀할 수는 없다. 디지털 기술이 제공하는 혜택을 포기할 수 없다면 남은 선택은 정보 보호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를 위한 강력하고 효과적인 보호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정부는 대규모 정보 유출 사건 후 여러 대책을 논의하고 있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개인 차원에서의 보안 강화, 기업 차원의 보안 투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정부는 국가적 차원에서 AI를 활용한 능동적 방어 시스템을 마련하고, 기업이 보안을 소홀히 하거나 해킹 사고를 은폐하려 할 경우 강력한 처벌을 할 수 있는 법적 규제를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 또한 공공 데이터의 개방과 활용을 독려하기 전에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충분하고 적절한 조치가 선행되어야 한다.
편리하고 빠른 서비스에 현혹되어 더 중요한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서비스를 놓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 과연 우리 정부는 국민의 불안을 해소하고 있다고 장담할 수 있을지 스스로 물어보기를 바란다.
오철호 숭실대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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