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음악도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
여러 형식적 실험 거치며 영역 확장
단순배경음 아닌 예술로 정착 기대
어린 시절, 학교와 어른들은 한목소리로 말했다. ‘게임은 나쁘다. 공부에 방해만 된다.’ 게임은 늘 부정적인 대상이었고 몰입할수록 죄책감까지 따라왔다. 그러나 정작 세월이 흐른 지금, 문화의 한 축을 움직이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게임이다. 특히 그 안에서 흐르는 게임음악은 더 이상 단순한 배경음이 아니라 새로운 예술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게임산업은 이미 영화산업을 넘어섰다. 전 세계적으로 게임시장은 매년 수백조원 규모로 성장하고 있으며 관객의 몰입도를 책임지는 음악 역시 그만큼 비중이 커졌다. 과거에는 영화음악이 대중예술과 순수예술의 가교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게임음악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단순히 화려한 효과음 수준에 머물지 않고 웅장한 교향곡, 정교한 실내악 편성, 심지어 실험적인 전자음악까지 아우르며 하나의 장르로 확장되고 있다.

이 흐름을 증명하듯 세계적인 작곡가들도 게임음악에 뛰어드는 중이다. 영화음악 작곡가로 알려진 한스 짐머(Hans Zimmer)는 이미 여러 게임에 참여해 왔다. 그가 음악을 맡은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2’의 메인 테마는 전쟁영화 못지않은 긴장감과 서사를 불어넣었다. 일본의 작곡가 우에마쓰 노부오는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를 통해 ‘비디오 게임 음악의 베토벤’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그의 음악은 전 세계 교향악단에 의해 독립적으로 연주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게임음악이 클래식 공연장에도 새로운 청중층을 불러오고 있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클래식 공연장의 객석은 대체로 나이 든 세대가 차지하지만 게임음악 콘서트의 객석은 전혀 다르다. 20대, 30대, 심지어는 10대 관객들까지 콘서트홀을 메우며, 교향악단의 연주를 열광적으로 받아들인다. 이들은 베토벤이나 모차르트를 몰라도 ‘젤다의 전설’, ‘파이널 판타지’, ‘엘더스크롤’의 선율은 온몸으로 느낀다. 다시 말해 게임음악은 기존 클래식 시장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관객층을 클래식 공연장으로 이끌어오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다닐 트리포노프(Daniil Trifonov)는 몇 해 전 ‘엘더스크롤’ 게임음악을 피아노 앨범으로 발표해 화제를 모았다. 전통 레퍼토리만 연주하던 세계적인 클래식 피아니스트가 게임음악을 선택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신호다. 이는 단순히 새로운 레퍼토리를 찾는 차원을 넘어 게임음악이 이미 연주될 가치가 있는 ‘예술적 성취물’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게임음악이 클래식 음악 그 자체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베토벤의 교향곡이나 바흐의 마태수난곡이 보여주는 깊이와 구조, 인류 역사 속에서 쌓인 예술적 맥락은 결코 쉽게 따라올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음악은 클래식 음악이 놓치고 있던 활력을 다시 불어넣는 매개가 되고 있다. 새로운 청중을 공연장으로 이끌고, 교향악단에 새로운 무대를 제공하며, 작곡가들에게는 또 다른 창작의 장을 열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게임음악이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화음악이 어느 순간 일정한 문법에 안착하며 반복되는 경향을 보였다면, 게임음악은 여전히 다양한 장르와 형식을 실험하며 영역을 확장 중이다. 관객이 직접 플레이하며 만들어가는 ‘인터랙티브 음악’, 인공지능과 결합한 즉흥적 사운드 디자인, 그리고 전통 교향곡의 구조를 차용한 서사적 게임음악까지, 게임음악은 아직 끝나지 않은 열린 미래다.
어린 시절엔 ‘나쁜 것’으로 낙인찍히던 게임이, 이제는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물론 게임음악은 현재 클래식 음악을 완벽하게 대체하진 못한다. 그러나 클래식 음악이 잃어버린 청중을 다시 불러내고, 연주회장의 문턱을 낮추며, 음악의 미래를 새롭게 열고 있다. 거기에 이 새로운 흐름은 아직도 확장되고 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게임의 선율은, 몇 세기 뒤에는 클래식 레퍼토리의 한 축으로 남아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허명현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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