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씌어진 시’ 등 동판에 새겨

일제강점기 저항시인 윤동주(1917∼1945)의 시비(詩碑·사진)가 시인의 80주기를 맞아 11일 일본 도쿄 릿쿄대에 세워졌다.
릿쿄대는 1941년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를 졸업한 시인이 일본 교토 도시샤대에 편입하기 전인 1942년 4월부터 반년가량 영문학을 배우던 곳이다. 비석 위에는 시인의 릿쿄대 당시 생활을 설명한 짧은 글과 시인 사진, “육첩방은 남의 나라 //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라는 구절로 잘 알려진 ‘쉽게 씌어진 시’를 새긴 동판이 놓였다.
시인이 조선 독립을 논의하는 유학생 단체에서 활동했다는 혐의로 체포돼 1945년 2월 옥사하기 전까지 일본에 있던 3년간 쓴 시 가운데 현재 남은 것은 5편뿐이다. 모두 백합 문양이 있는 릿쿄대 편지지에 적어 서울의 친구 강처중에게 보낸 것이다.
연세대, 도시샤대에 이어 릿쿄대에도 시비가 세워짐에 따라 시인이 수학한 세 곳 대학교에서 모두 한글로 적힌 그의 시를 볼 수 있게 됐다. 시인의 조카인 윤인석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제막식에서 “이제 일본에서 시인 윤동주를 기리는 물리적 터전은 모두 마련됐다”며 “이 비석에 새겨진 시와 안내문을 읽는 모든 이들이 큰아버지의 뜻과 시비를 세운 분들의 염원을 함께 느끼길 바란다”고 말했다.
시비는 시인이 자주 오가던 장소로 추정되는 교정 내 다치카와기념관 앞에 세워졌다. 니시하라 렌타 릿쿄대 총장은 “평화, 생명에 대한 시인의 가르침을 지속해서 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성공회 선교사가 세운 학교가 뿌리인 릿쿄대가 창립자 동상 외에 특정인을 위한 기념비를 세운 것은 이례적이다. 예배 형태의 제막식을 집전한 사제는 “패전 80년을 맞이한 이때, 일본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으로 인해 희생된 모든 이들, 특히 시인 윤동주를 마음에 새긴다”며 “그가 남긴 정의의 시를 통해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깊은 반성을 배우게 하소서”라고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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