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법상 재판 중인 법관 감사 불가”
감사 절차·내용 모두 위법 소지 비판
13일 조희대 대법원장 이석(離席) 여부를 두고 대법원 국정감사 현장이 아수라장이 된 데 대해 법조계에서는 “사법부 독립 침해”라는 반발이 터져 나왔다. 대법원장이 인사말 후 바로 이석하는 관례가 삼권분립을 보장하려는 취지에서 나온 만큼 이석을 불허한 것 자체가 사법 독립 침해라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이 계류 중인 상황에서 전원합의체 재판장인 대법원장을 상대로 해당 재판을 문제 삼은 것 자체가 법률 위반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조 대법원장은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대법원 국감에서 인사말 후 퇴장할 계획이었으나 더불어민주당 소속 추미애 법제사법위원장이 이석을 막아 90분 동안 굳은 표정으로 자리를 지켰다. 추 위원장은 조 대법원장을 증인이 아닌 참고인 신분으로 전환한 후 법사위원들의 질의를 강행했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이 대법원장 이석을 위해 발언권을 요청했지만, 추 위원장은 두 차례나 천 처장의 발언을 막으며 이를 거부했다.

여당의 이런 감사 진행은 절차와 내용 측면에서 모두 위법 소지가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회증언감정법 7조2항에 따르면 참고인으로 출석한 사람이 증인으로서 선서할 것을 승낙하는 경우에는 증인으로 신문할 수 있다. 하지만 조 대법원장은 이날 인사말에서 증인으로 출석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데다, 증인뿐 아니라 참고인 선서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민주당은 조 대법원장의 이석을 거부하며 “한덕수를 만난 적 있냐 없냐, 왜 말을 못하냐”(박균택 의원), “윤석열이랑 만난 적 있느냐. 윤석열과 무슨 얘길 나눴냐”(서영교 의원)라며 추궁했다.
윤진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국정감사법 8조는 국회가 진행 중인 재판에 대해 법관 등을 불러 감사 또는 조사를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오늘 국정감사는 이런 법률 조항을 어긴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 대법원장을 향한 여당의 무차별적 질의가 헌법이 보장한 ‘삼권분립에 위배된다’는 날 선 반응도 나왔다. 대법원장에게 재판 관련 질의를 한 것 자체가 일선 판사들이 국회 눈치를 보도록 ‘본보기’로 압박한 것이며 재판의 독립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민주당 박균택 의원은 이날 조 대법원장을 향해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속도 처리한 선거법 재판이 옳았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고, 같은 당 전현희 의원은 “이재명 (당시) 후보는 사회자 질문에 소극적으로 답한 거지 고의로 답한 게 아니라 기존 대법원, 헌법재판소 판례에 의해 명백한 무죄임에도 유죄 판결을 했다”며 거듭 이 대통령의 무죄를 주장했다.
지방의 한 판사는 “여당의 목적은 사법부가 자신들에 반대되는 판결을 하면 대법원장도 불려 다니고 참고인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한 것 같다”며 “민주주의와 삼권분립에 역행하고 헌법 정신에 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고법 부장판사는 “사법부 독립을 침해하지 않기 위한 차원에서 나온 관례를 무시한 명분이 재판 관련 질의를 하려는 이유이기 때문에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국민을 위한 바람직한 사법행정 방안을 다뤄야 할 국정감사장이 근거 없는 의혹 제기와 정쟁의 장으로 전락했다”고 토로했다.

사법부가 처한 상황을 탄식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친여권 성향의 무소속 최혁진 의원은 조 대법원장의 얼굴을 일본식 상투를 튼 모습에 합성해 ‘조요토미 희대요시’라고 적힌 패널을 들고 “법원이 친일 사법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 전직 대법관은 “거북하고 안타까운 장면”이라며 “입법부와 사법부가 서로 존중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는데, 이렇게 존중이 사라진 상황을 막아줄 조정 장치가 없으니 문제가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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