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뺏는다’고 많은 미국인들 오해
韓의 美 투자 트럼프 정부 목표와 일치
정부·기업 ‘조율된 커뮤니케이션’ 필요
美 곳곳 韓 투자 지지하는 우군들 있어
활용할 ‘플랫폼·그룹·연합체’ 만들어야
韓 중요성 美에 전달하는 게 가장 중요
李 대통령 실용적·일관된 모습 보여줘
다변화 모색 속 韓은 CPTPP 가입해야”
태미 오버비 미국-아시아 협회 부회장·DGA 정부관계 파트너(전 미국상공회의소 아시아 담당 수석부회장)는 13일(현지시간) 워싱턴의 K스트리트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에서 가진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목소리가 미국 언론에서 잘 들리지 않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국은 미국에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최고 기술을 가져오고, 21세기형 고임금 일자리를 수천개 창출하는데 미국인들은 이를 잘 모른다는 뜻이다.

오버비 부회장은 한국 정부와 기업이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뛰고 있지만 통합된 전략이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 투자가 미국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왜 중요하며, 어떻게 트럼프 대통령의 목표와 일치하는지, ‘미국에 통하는 방식’으로 반복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해야 트럼프 행정부에 닿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최근 조지아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한국인 근로자 구금 사태에서 드러난 것은 한국이 미국의 일자리를 뺏는 것이 아니라 수백조원을 들여 미국인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음을 미국인들이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었다. 오버비 부회장은 교착된 한·미 무역 협상을 풀어가는 국면에서도 행정부, 의회, 언론에 한국이 미국에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짚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처음 한국 땅을 밟은 오버비 부회장은 이후 서울의 미국계 기업에서 근무하며 한국살이를 시작했다. 1995년부터 14년간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암참) 대표직을 역임했다. “지루해지면 떠나겠다”고 했는데 지루해지지 않아 21년을 한국에 머물렀다고 한다. 현재 워싱턴의 컨설팅 회사에서 기업에 자문하고 미국과 아시아의 관계 촉진을 위한 비영리기구 활동을 하고 있다. 2009년 워싱턴으로 옮긴 뒤 미국상공회의소 아시아 담당 수석부회장 재직 시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위해 미국 기업의 목소리를 모으고 의회를 설득했던 그는 트럼프 행정부가 한·미 FTA를 존중하지 않아 미국이 한국에 신뢰를 잃고 있는 점을 안타까워했다.
―한국에서 미국 업계를 대표하고, 미국에서 한국 관련 자문을 해오면서 어떤 점을 느꼈나.
“한국은 미국의 최상위 투자국 중 하나다. 큰 투자자일 뿐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것, 반도체 등 최첨단 산업을 미국에 가져온다. 하지만 한국 기업들의 목소리는 거의 (미국) 언론에 등장하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의 세계에서는 ‘언론’이나 ‘트윗’에 나오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 기업은 미국에서 보도자료는 내지만 제대로 된 ‘스토리’를 들려주지는 않는다. 한국에서는 이 기업들이 너무 잘 알려져 있지만 미국인들은 잘 모른다. 먼저 소개를 해야 한다.”

―현재 한국이 미국 내에서 하는 홍보, 로비 전략이 불충분한가.
“주미한국대사관, 한국무역협회(KITA),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등은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잘하고 있다. 다만 통합적인 전략을 갖춘 ‘게임 플랜’이 없다. 정부와 기업 간에 ‘조율된 커뮤니케이션 캠페인’이 필요하다. 미국 투자가 어떻게 트럼프 행정부의 목표와 일치하는지 집중적인 캠페인을 통해 설명하는 일이다.”
―구체적으로 방법을 조언한다면.
“미국 내에서 ‘한국의 투자’를 지지하고 한국의 이야기를 들려줄 플랫폼·그룹·연합체가 있어야 한다. 활용할 플랫폼이 아주 많다. 현재 현대·기아는 자동차 관세 25%를 내고 있다. 도요타·혼다(일본), BMW·벤츠(유럽)는 모두 15%를 낸다. 지속 불가능한 구조다. 이런 얘기를 하기 위해 애틀랜타세계문제협의회(조지아)든, 오스틴지역상공회의소(텍사스)든 미국 내 그룹들이 나서도록 해야 한다. 조지아·앨라배마·텍사스·인디애나 등 미국 곳곳에 한국의 우군이 있다. 한국의 주요 투자가 있는 지역들이다. 정부가 ‘토킹 포인트’(대화 요지)를 만들어 미국 전역의 모든 총영사관이 같은 메시지를 들고, 시장과 주지사, 언론, 기업계를 만나 ‘왜 한국 투자가 좋은가’를 일관되고 꾸준하게 강조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도 중요하지만, 사실 그 주변 사람들이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한국을 이해하고 한국의 얘기를 전할 사람들을 고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는 한·미 무역 합의 과정에서 일부 미국 장관들이 사실과 다른 발언을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인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부정확성엔 익숙해졌을지 몰라도, 장관에게는 그렇지 않다”며 “미국 상무장관이라면 한·미 FTA가 있고 (자동차 관세 등이) FTA 위반이라는 걸 이해해야 했다”고 말했다. 한국의 소통 전략이 이들 미국 장관들에게 미치지 않았다는 뜻이다.
―조지아 한국인 구금 사태도 같은 차원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하나.
“그렇다. 많은 미국인이 오해한다. ‘한국인이 미국 일자리를 뺏는다’는 것이다. 사실이 아니다. 또 사건이 일어난 뒤 한국의 목소리는 통일되지 않았다. 대통령이 얘기하고, 총리가 ‘향후 투자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직후 현대는 27억달러(약 3조6000억원) 추가 투자를 발표했다. 내가 현대를 자문했다면 ‘모두 멈추라’고 했을 것이다.”
―한·미 정상회담은 어떻게 봤나.
“회담 당일 아침에 트루스소셜에 올라온 그 트윗(‘한국서 사업할 수 없다’ 등)은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에서 상대를 흔들고, 불편하게 만들고, 매끄럽지 않게 하려는 의도적이고 계산된 움직임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아주 잘 대응했다. 강하게 맞받지 않고 차분히 설명했다. 문제는 트럼프와는 모든 것이 ‘일시적’이라는 점이다. 그날 100% 합의하고 서명을 했더라도 여전히 불편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워싱턴에서 여전히 한국이 중국과의 관계로 인해 완전히 신뢰할 수 없다는 인식이 있나.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중국이 한국의 1위 교역 파트너이고, 이웃이며, 북한에 영향력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이해한다. 이 대통령이 ‘중국에 더 가깝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정상회담 이후 그는 매우 실용적임을 보여줬다. 진짜 신념이 무엇인진 알 수 없지만, 그는 한·미 동맹의 안보 가치를 분명히 이해하고 있고 한·미·일 3자 협력의 중요성에도 일관된 모습을 보여줬다.”
―한국 시장과 관련해 미국 기업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우려는 무엇인가.
“‘기업 친화적이지 않다’는 우려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현 정부는 온라인 플랫폼 문제에서 공정거래위원회에 권한을 더 주려 한다. 이 대통령 방미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테크 기업을 부당 대우하지 말라’는 장문의 글을 올렸는데 직접적으로 한국을 거론하지 않았지만 한국을 겨냥한 경고처럼 들렸다. 한국은 혁신 생태계를 갖추고 있지만, 절차적 정당성과 투명성 부족에 대한 불만이 (미 업계에서) 있다.”
오버비 부회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글로벌 경제를 뒤흔드는 시기에 각국은 다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미국으로부터의’ 다변화도 포함”이라며 한국에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강력히 권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CPTPP에 가입하면 환태평양 12개 시장에 접근하고, 사실상 일본과의 FTA 효과도 얻는다”고 말했다. 미국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결성을 주도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1기에 TPP에서 빠지면서 현재는 미국 없이 CPTPP를 이어가고 있다.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이펙) 정상회의는 잘 진행될 수 있을까.
“비즈니스 서밋(경제인 회의) 일정은 보통 1년 전에 짠다. 한국의 경우 행사 1년 전 정치적 혼란(탄핵 사태)이 있어 기업들의 참석 여부에 혼란이 있었던 것 같다.”
―오랜 한국 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한국 친구들이다. 한국에서 제가 깨달은 건 ‘한 번 인연을 맺으면 끝까지 함께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신의는 놀랍다. 결코 실망시키지 않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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