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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일본의 노벨상 수상 방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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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0-19 22:49:54 수정 : 2025-10-19 22:49:54
유태영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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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과학 분야 수상 2위
전국 곳곳에 배출 고교·대학

“주류에 반하는 길” 갈 수 있는
자유·독창적 학풍 곱씹어 봐야

지난 6일 오후 7시. 저녁뉴스를 시작하는 NHK방송에선 들뜬 기분이 그대로 느껴졌다. 진행자는 “반가운 소식이 있다”며 30분 전쯤 발표된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중에 사카구치 시몬(坂口志文) 오사카대 특임교수가 포함돼 있다는 뉴스를 전했다.

그 전까지 노벨상을 받은 일본인 개인(외국 국적 취득자 4명 포함)은 28명. 그중 자연과학 분야 수상자도 25명이나 있었기에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길 법도 했다. 그렇지 않았다. 일본 언론들은 일찌감치 그의 수상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었던 듯했다. 퇴근하는 사카구치 교수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고, 전문가가 생방송 스튜디오에 나와 그의 연구 성과를 설명했다. 오후 7시30분쯤부터 도쿄 신바시역 광장에서는 신문 호외가 배포됐다.

유태영 도쿄특파원

이틀 뒤 기타가와 스스무(北川進) 교토대 특별교수가 노벨화학상을 받으면서 일본의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는 27명으로 늘었다. 국가별로 보면 아시아에서 부동의 1위이자 세계 5위다. 2000년 이후 수상자만 따지면 22명으로 과학기술 초강대국 미국 다음으로 많다.

인공지능, 바이오 등 첨단 과학기술의 토대가 되는 기초과학 분야에서 일본이 꾸준히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것을 그저 부러워하거나 의미를 애써 축소할 일은 아니다. 관련 기사를 읽다 보니 곱씹어볼 대목이 적지 않았다.

올해 수상자인 사카구치, 기타가와는 둘 다 교토대 출신이다. 일본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가장 많이 나온 학부가 바로 교토대(10명)이다. 도쿄대가 두 번째(9명)인데, 문학상(2명)과 평화상(1명)을 빼면 6명으로 줄어든다. 3명을 배출한 나고야대가 3위이다. 대부분은 박사학위까지 일본 내에서 받은 순수 국내파이다.

교토대가 노벨상의 산실이 된 데 대해 오카모토 다쿠지(岡本拓司) 도쿄대 교수(과학사)는 “응용화학 등 분야에서 우수한 연구자들이 모여 논의를 거듭하며 연구를 진행했다”며 “노벨상 수상자가 속한 대학에서 연구하다 보면 ‘나도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자극이 되는 것도 크다”고 말한다. 한 번 물꼬가 트이니 도도한 물결이 흐르기 시작한 셈이다. 일본 최초의 노벨 물리학상, 화학상, 생리의학상 수상자가 모두 교토대를 나왔다.

자유로운 학풍과 독창성도 주요 이유로 꼽힌다. 교토대 출신으로 2001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노요리 료지(野依良治)는 “세계 제일이 아니라 세계 유일을 추구하는 것이 교토대의 경쟁력”이라고 했다. 올해 수상자인 기타가와는 한때 “배움이 부족하다”는 지도교관에게 “공부가 부족한 것은 당신”이라고 대들었으나 “건방진 것은 연구자에게 오히려 장점”이라고 용인받았다. 면역체계 내 피아를 식별하는 경비병 격인 ‘조절 T세포’를 발견한 사카구치는 노벨위원회로부터 “학계 주류 의견에 반하는 길을 걸었다”는 평가를 받았고, 이제 암을 치료하는 시대까지 내다보고 있다.

수상자 배출 대학 태반이 도쿄가 아닌 지방에 있다는 점도 눈에 띄었다. 1900년대 초중반 정예 인재 육성을 위해 만든 제국대학이 뿌리인 교토대, 나고야대 등을 제외하더라도 고베대, 도쿠시마대, 사이타마대, 야마나시대 등 지방의 여러 대학에서 수상자가 나왔다. 일본 역시 ‘도쿄 일극 집중’ 현상이 심각하지만 지역 인재가 거점 대학이나 기업에 진학·취업하는 생태계가 살아 있는 곳이 아직 많다는 점이 우리나라와 다르다.

수상자 대다수가 지방 국공립고 출신이라는 점도 흥미로웠다. 산케이신문 조사에 따르면 사립고나 도쿄의 고교를 나온 수상자는 3명뿐이다. 현지 전문가들은 수험 공부 위주의 교육이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열중하는 ‘비효율’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이런 차이를 만들어냈다고 분석한다. 교토시립가이켄고교 출신인 올해 수상자 기타가와는 중학생 시절 배구부 주장을 맡을 정도로 동아리 활동에 열심이었고, 시가현립나가하마기타고교를 나온 사카구치는 후학들에게 “스포츠든 과학이든 자기 흥미를 계속 추구하다 보면 새로운 것이 보인다”고 조언했다.

우리나라에 아직 과학 분야 노벨상이 없는 이유가 지원·투자의 문제에 국한되는 것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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