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공급의 60% 이상을 정비사업이 차지하고 있는 서울에서 정비사업의 신속한 추진은 주택 가격을 안정화하기 위한 최우선 수단이다. 그동안 서울시는 신속통합기획으로 구역지정 및 조합설립 기간을 줄였고, 도시계획 통합심의를 통해 절차도 간소화해 사업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했다. 이 상황에서 정비사업 기간을 더 줄이기 위해 구역지정과 인허가권을 자치구에 이양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인허가 권한이 시에 과도하게 몰려있어 정비사업 속도가 지연된다는 취지다. 정부·여당은 마치 이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태세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구역지정이나 계획 인가보다는 자치구로 이관된 사업시행 및 관리처분 인가 단계에서 기간이 늘어나고 있다는 지적이 일반적이다. 사업을 신속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사업성을 높이고, 건설사와 조합 간 갈등을 관리하기 위한 조치가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구역지정과 심의 권한을 자치구로 위임하면 속도가 더 개선될 수 있는 것인지 의아해지는 대목이다.
첫째, 속도를 높이자면 규제 완화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는 것이 상식인데, 자치구마다 서로 다른 기준과 절차를 적용하면 혼란을 야기해 속도를 지연시킬 수 있다. 경쟁적인 규제 완화 속에 각기 다른 심의 기준이 만들어져 사업마다 편차가 발생한다면 신뢰를 잃은 시장의 불확실성은 사업의 표류 내지는 장기화로 가는 원인이 될 것이다.
둘째, 동일한 기준과 절차 속에서 구역지정과 심의가 진행된다 하더라도 자치구가 계획을 수립하고 결정할 계획체계와 심의 역량을 가졌는지도 걱정스럽다. 당장 정비구역을 지정하고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자치구 단위의 기본계획도 있어야 하고, 각종 이권과 특혜가 난무하는 건축·교통·환경 등 각종 위원회도 재정비해야 한다. 구역지정과 심의 속도는 심의의 양보다는 위원회 운영의 질에서 결정된다. 서울시의 통합심의를 통한 절차 간소화도 오랜 경험과 축적된 역량 속에서 가능한 것이다. 계획 결정과 위원회 진행에 대한 체계와 축적된 경험이 부족한 탓에 계획의 질 저하, 인프라 부족에 따른 난개발, 각종 민원의 증대가 불 보듯 뻔하다.
셋째, 자치구로 이양된 정비사업 업무를 추진하는 조직과 인력 부족도 문제다. 자치구는 반대의견을 중재해 주민 동의를 높이고, 시행사의 불합리한 절차 이행을 점검해 사업을 독려하는 현장업무를 한다. 자치구에 정비계획 입안과 사업시행인가 및 관리처분인가 권한을 위임한 것도 그러한 이유이다. 정비사업이 집중된 20여 개 자치구는 현장만 50개에 이르고, 70개가 넘는 구도 있다. 현재 자치구 조직과 인원으로는 사업장별 계획입안과 사업시행인가 및 관리처분인가 이행도 벅찬 일이다. 또한 주민들과 시행사의 각종 사업성 개선 요구에 시달리면서 계획을 결정하고 사업장을 관리·조율하는 것이 가능한지도 의문이다.
정비사업의 속도는 권한의 분할이 아니라 일원화된 실행에서 나온다. 서울시는 이미 신속통합기획으로 입안 전 공공기획과 정비계획 결정에 이은 건축심의를 통합, 단계의 일원화를 완성했다. 이제는 사업시행인가에서 관리처분인가 단계까지 확대해 통합하는 2단계 혁신이 필요하다. 자치구 권한 이양이 아니라 이 확대된 단계까지 전문적으로 전담할 정비사업시행 종합부서를 시에 신설해야 혁신적인 주택 공급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임희지 서울연구원 선임연구위원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왕설래] 방산 특사](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5/11/10/128/20251110517348.jpg
)
![[채희창칼럼] 정년 연장 법제화 무리해선 안 돼](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5/11/10/128/20251110517336.jpg
)
![[기자가만난세상] 청년기본소득 명암](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5/11/10/128/20251110517262.jpg
)
![[기고] 정비사업 신속 추진, 자치구 권한 이양이 답인가](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5/11/10/128/20251110517225.jpg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