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커뮤니티 소통 게시판에는 여러 목적의 글이 올라온다. 분실물 찾기나 소소한 정보 공유, 시설 고장에 대한 민원글이 올라올 때도 있다. 언젠가 나는 길고양이를 돌보던 사람이 심하게 아픈 고양이가 있어 병원에 데려가야 하는데 어디 숨었는지 보이지 않는다며, 발견하면 알려달라는 간절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마침 단지 내를 산책하던 나는 인공폭포 뒤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사진 속 고양이를 발견했다. 사진을 찍어 위치와 함께 전송하는 동안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렸던 기억이 아직 선명하다. 나중에 그는 내게 메시지를 보내, 덕분에 고양이를 잘 포획해 병원에 데려갔으나 끝내 고양이별로 떠났다는 소식을 알려주었다.
게시판에 올라온 글 중 하나가 유난히 눈에 띈 건 제목 때문이었다. ‘놀이터에 아이 혼자 내보내지 마세요.’ 대뜸 그렇게 써둔 제목이 궁금하기도 하고 섬뜩하기도 해서 글을 열어보았다. 본인을 초등학생 자녀를 둔 엄마라고 소개한 글쓴이가 상당히 거친 문장으로 남긴 글이었다. 요약하자면 이랬다. 하교한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갔는데 벤치에 이상하리만큼 아이들이 모여있더라, 무슨 일인가 싶어 가보니 ‘결코 아이들이 보아서는 안 되는 영상’을 보고 있는 남자 주변으로 초등학생 아이들이 바글바글하더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놀이터 벤치에서 웬 성인 남자가 핸드폰으로 이상한 영상을 대놓고 보고 있고, 아이들이 그것을 함께 봤다는 소리였다.
‘뭐 하는 거냐고 소리치니 남자가 그냥 씩 웃고 마는 거예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보더라고요. 아이들을 쫓아내긴 했는데 어른이 사라지면 또 모여들겠죠.’ 아이들이 그 남자와 마주치지 않게끔 놀이터에 혼자 내보내지 말라고, 붉은 점퍼를 입은 수상쩍은 남자가 눈에 띄면 경비실에 신고하라고 글쓴이는 거듭 말했다.
게시글은 이미 조회수와 댓글이 상당했다. 나는 습관처럼 스크롤을 내려 밑에 따라붙은 댓글을 읽었다. ‘전에도 그 남자 본 적 있어요, 일부러 소리를 키워서 아이들이 몰려들게 만들더라고요. 경찰에 신고당해서 안 나타나나 했는데’ ‘지능이 떨어지는 사람인 거 같았어요’ ‘그걸 왜 놀이터에서, 애들 있는 데서 일부러’ ‘한여름에도 그 바람막이 점퍼 입고 다닙니다, 이상한 사람 맞아요’ ‘예전에는 주민들이 방범단 꾸려서 순찰돌고 그랬는데 아이들 등하교 시간에는 좀 필요한 거 아닌가요?’ 부산하던 댓글은 어느 순간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외부인들이 자꾸 들어와서 시설물 부수는데 관리비는 우리가 내니 속 터져요’ 댓글은 이제 픽시자전거를 험하게 타고 다니는 ‘외부인’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노리는 ‘외부인’ 남자와 으슥한 곳에서 수상쩍은 행동을 하는 ‘외부인’ 청소년들 이야기로 빼곡했다. 나는 그만 보고 있던 화면을 껐다. 소통 게시판이지만 누구도 대화하지 않고 누구도 소통하지 않는 그곳에서, 편견으로 뒤덮인 기이한 혼잣말만 가득한 그곳에서 게시글 애초의 목적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안보윤 소설가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왕설래] BBC의 굴욕](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5/11/11/128/20251111518027.jpg
)
![[데스크의 눈] 빚투에 대한 이중잣대](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0/11/10/128/20201110523430.jpg
)
![[오늘의 시선] 다카이치 ‘대만 파병’ 발언과 한국의 딜레마](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5/11/11/128/20251111517592.jpg
)
![[안보윤의어느날] 소통이 사라진 자리](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5/11/11/128/20251111517579.jpg
)






![[포토] 아이린 '완벽한 미모'](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5/11/11/300/20251111507971.jpg
)

